[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내부고발 논란이 뜨겁다.
공정위가 4대강 건설사 입찰담합 조사를 고의적으로 지연했다는 내용의 내부문서가 야당 국회의원에게 유출되면서, 기업 공정거래조사문제가 정치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정책이다보니 청와대 개입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공정위가 유출자를 색출하는 내부감찰에 착수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건은 공익제보자의 보호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3년전 야당 의원에게 검찰총장 후보자의 면세점 구매목록을 제공해 내부감찰을 받고, 해임처분까지 당한 관세청 직원의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도 높다. 이후 2011년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신설됐지만, 법 위반 여부를 놓고 해석이 엇갈린다.
야당은 공익신고는 공직자에게 주어진 신고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공정위의 색출작업 자체가 공익신고자보호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공정위는 내부보안문제를 해결하는 정당한 조사라고 맞서고 있다.
18일 채규하 공정위 대변인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어떤식으로는 관공서에서 문건이 유출된 의혹이 있는데, 아무것도 파악하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넌센스"라며 내부조사에는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공정위, 내부문건 유출 시인..청와대 지시 없었을까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9일 공개한 공정위의 내부문건은 지난해 7월 1일 공정위 카르텔총괄과가 작성한 것으로 표기돼 있다.
'4대강 입찰담합 조사 진행상황'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4대강 담합조사와 관련한 공정위의 향후 계획에 대해 "사건의 처분시효, 내년 총선 및 대선 등 정치일정에 따른 정치적 영향력 배제 등을 고려해 '대선 이후 (위원회) 상정을 목표로 심사할 계획'"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미 2009년 4대강 입찰담합 정황을 확인한 공정위가 2년 넘게 처리를 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시 대선이후로 사건처리를 미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도 유출된 문건이 내부문건임을 시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4대강 입찰담합 관련) 내부자료들이 반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내부감사담당관들이 점검하고 있다"며 김 의원이 공개한 자료가 내부자료임을 시인함과 동시에 사실상 내부고발자 색출작업도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야당은 공정위가 내부적으로 '대선 이후 상정을 목표로 심사할 계획'이라는 방침을 세운데는 청와대 차원의 압력행사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김기식 의원은 작년 2월 15일 공정위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또다른 문서를 공개하며 "공정위가 사건처리를 위해 사전에 청와대와 협의했다"고 주장했다.
이 문서에는 "사건처리 시점 결정을 위해서는 청와대와 사전협의 필요"라고 적시하고 있다. 특히 하루 전인 2월 14일자에서 '현재 심사보고서 작성 완료'라고 표기됐던 부분을 수정해 '심사보고서 작성중'으로 표기한 정황까지 담고 있다.
김 의원은 "공정위 내부 윗선이 정치적 고려를 지시받지 않고는 실무자가 이렇게 수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4대강 담합사건의 청와대 개입정황은 이미 2009년에도 포착됐었다.
당시 정호열 공정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4대강 사업 턴키공사의 입찰담합 의혹에 대해 "담합과 관련되는 듯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며칠 뒤 박재완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정 위원장의 발언이) 와전됐다"고 수습에 나섰고, 공정위도 뒤따라 기자들에게 정 위원장의 발언을 부정하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공정위는 이번에 유출된 문건에 대해서도 "사건처리에는 어떤 외압도 있을 수 없다"면서 "(공개된) 자료들은 카르텔 조사국 내에서 작성된 실무자 자료일뿐 김동수 위원장은 물론 다른 간부들에게도 일체 보고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2의 천성관 사건..유출직원 징계하나
공정위는 내부문건 유출에 대해 당혹스러워하면서 동시에 관련자 색출작업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감사부서를 통해 보안시스템 관련 규정 위반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최소한의 범위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보안점검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야당은 공익제보자 색출작업이 시작됐다며 비난하고 있다.
공정위 내부감찰반은 문서작성처로 지목된 카르텔총괄과 직원 등을 대상으로 자료의 인수인계경위 및 보안규정 위반여부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수 위원장이 국회에서 "공정위로서는 중대한 내부보안 관련 문제라고 본다"며 이번 문건유출에 대해 심각한 상황임을 언급한 만큼, 관련자가 확인될 경우 징계처분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관련자가 어떻게든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경우 2009년 '천성관 사건'에 버금가는 공직 내부고발사건으로 비화될수도 있다.
당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부인의 면세점 고가가방 구매사실을 폭로했고, 해당 정보를 야당 의원에게 유출한 관세청 직원 색출작업이 진행되면서 결국 해당 직원이 해임조치되는 사례로 이어졌다.
야당 의원에게 내부문건을 유출한 이번 사건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다.
이번 공정위 내부문건 유출사건이 천성관 사건과 다른 점은 당시와는 달리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시행중이라는 점이다. 천성관 사건 이후 정치권에서는 내부고발이나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제정이 추진됐고, '공익신고자보호법'이 마련돼 지난해 9월말부터 시행되고 있다.
김기식 의원은 "4대강 입찰담합 사건 신고자는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직자에게 주어진 신고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절차상으로 적법하다"며 "사실상 공익신고자를 색출하는 공정위의 행위는 제보자 색출만으로도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에는 공무원도 신고자가 될 수 있으며, 신고대상에는 공익침해행위에 대한 지도·감독·규제 또는 조사 등의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이나 감독기관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여기에 공정위의 국정감사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도 포함된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이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적용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법리검토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동수 위원장은 18일 기자들과 만나 "김기식 의원의 내부제보자 색출 중단 요구에 대해 (법리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고,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내부에서 이번 보안 점검 내용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위배되는지에 대한 법리적 검토 중에 있다"며 "오는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검토를 끝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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