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관종·조정훈기자]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 재매각 예비입찰에 대한항공이 참여하자 정책금융공사가 수의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매각 당사자인 KAI 임직원들이 격하게 반발해 매각과정의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막대한 부채로 '인수자격' 논란에 휩싸인 대한항공의 매각 참여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까지 사업참여를 만류한 것으로 드러나자 KAI 내부에서는 `반대한항공`에 대한 전선을 공고히하고 일전불사의 태세를 분명히하고 있다.
◇"부채 830% 기업과 수의계약 안될 말"
26일 정책금융공사와 KAI 등에 따르면 KAI의 매각주간사인 산업은행과 크레디스위스증권 서울지점은 지난 17일 카이 주주협의회가 보유한 지분 41.75%에 대한 재매각을 공고했다. 인수 적정가격은 약 1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1차 예비입찰이 대한항공의 단독 참여로 유찰되면서 재매각 공고를 낸 것. 1차 유찰 당시 일각에서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던 KAI 노조 등은 이번 대한항공의 2차 예비입찰 단독 참여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부채비율 830%인 대한항공이 한창 도약의 시점에 있는 KAI를 인수하는 것 자체가 동반 경영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부실기업이 우량기업을 인수하는데 대한 반발이다.
지난 25일 예상대로 대한항공이 매각주간사인 산업은행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자 KAI 내부에서 수의계약을 통한 대한항공으로의 순매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 국가계약법상 두 차례 매각 일정에도 복수의 입찰 희망자가 나서지 않을 경우 대한항공과의 수의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KAI 관계자는 "정책금융공사가 수의계약을 고수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안다"며 "직원들의 불안함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수의계약은 정책금융공사의 직무유기"
이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의계약을 통한 매각이 어려울 것 같다. 주주협의회와 협의해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라며 대한항공과의 수의계약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금융공사는 최근 재매각공고에 이어 '경영권프리미엄'을 획득할 수 있다면 수의계약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일단 유효경쟁이 성립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또다시 유찰돼 국가계약법상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면 그 문제는 다시 주주회의로 넘겨 논의한 뒤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다른 참여자가 없다면 수의계약은 어쩔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KAI관계자는 "가격만 맞으면 넘긴다는 것은 국가의 산업적 측면을 살피는 공사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며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아닌 이상 인수자격이 있는지 또 국가적으로 이익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처럼 정책금융공사가 대한항공 수의계약 방침을 유지한다면 이는 엄연한 직무유기"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KAI 임직원들은 이날(26일) 쟁위 찬반투표에 이어 27일과 다음달 3~5일 팀장급 상경투쟁을 벌일 방침이다.
◇부채 많은 대한항공 수의계약 논란 여전
KAI 측에서 대한항공의 수의계약 인수를 반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부채비율 830%에 이르는 부실기업 대한항공이 부채비율 100% 안팎인 우량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부실한 재무구조 때문에 대한항공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마저 사업참여를 만류하고 있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지난달 28일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그룹에 KAI 인수 관련 사전협의를 요청했고, 협의결과 사업참여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 내용의 공문서를 전달했다.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그룹에 보낸 '인수우려' 내용이 담긴 공문서
지난달 30일 산업은행이 한진그룹에 보낸 공문서에는 "예비입찰 참여 및 자금조달방안과 관련 재무구조개선약정상 제반사항 준수가 곤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업참여에 대한 부정적이라는 입장이 명시돼 있다.
대한항공은 산업은행과 체결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에 따라 기업 인수 합병 등 사업을 추진할 경우 사전 협의를 요청해야 한다.
KAI 관계자는 "앞으로 한국형 전투기(K-FX), 한국형공격헬기, 90인승 민간항공기 등 군수와 민수분야 1조5000억원 규모의 국책연구개발사업이 남았는데 금융권까지 의심하는 기업이 주요사업 자금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대한항공은 현재 KAI 인수를 위한 1조원 규모 자금도 간신히 마련하고 있어 자금 유동성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한항공이 인수할 경우 견실한 KAI까지 동반 부실화의 위험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시너지효과 등을 판단했을 때 KAI 인수에 대한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매각 가격이 관건"이라며 확고한 인수의지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항공기를 자체적으로 만든 역사도 있고 군용기 등 정비사업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며 "자격도, 자금 조달 능력도 충분하다. 산업은행의 부정적인 판단이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건 매각 가격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대한항공의 KAI인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산업은행도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과도한 외부자금 조달이 있을 때 KAI 인수가 부정적이라고 말한 것이지 입찰참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부채비율을 떠나 어느 기업이든 다 참여할 수 있으며 판단은 본 입찰"이라고 물러섰다.
그는 이어 "본입찰에서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중심으로 외부차임금 액수 등 세부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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