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황민규기자] 이른바 '윤부근 냉장고'로 불리는 삼성전자 지펠 T9000이 아파트 빌트인(built-in. 붙박이) 규격에 맞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소비자일 경우 냉장고 자리에 T9000을 설치할 수 없어 반품 등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005930)는 지난 7월 가정용으로는 세계 최대 용량인 900리터(ℓ)짜리 T9000을 시장에 내놨다. 냉동실과 냉장실 위·아래 위치를 바꾸는 등 소비자 편의를 위해 혁신적 변화를 시도했다.
프리미엄 냉장고 T9000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400만원에 육박하는 높은 가격임에도 이달 초 기준으로 판매량 3만대를 돌파했다. 한 달에 1만대 꼴로 판매가 이뤄진 셈이다.
세계 TV 시장을 7년 연속 석권한 윤부근 소비자가전(CE. Consumer Electronic) 부문 사장의 첫 작품이 쾌거를 이뤄내자 자연스레 '윤부근 냉장고'라는 애칭까지 따라붙었다.
문제는 T9000이 대다수 아파트의 빌트인 규격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사고 싶어도 규격이 맞지 않아 불만이 쌓이고 있고, 심지어는 구매 이후 설치 과정에서 규격이 안 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반품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T9000은 가로 908에 높이 1850, 깊이 939mm 크기에 무게는 160kg인데, 대부분 아파트의 냉장고 전용공간 규격을 넘어선다.
대우건설 푸르지오 경우 냉장고 전용공간의 규격은 가로 1070에 높이 1900, 깊이 700mm로 설계돼 있다. 쌍용건설의 예가는 가로 1100에 높이 2130, 깊이 883mm가 냉장고 전용 공간이다.
수치상으로는 높이가 맞지만 마감재와 냉장고 받침대 등을 고려하면 1800mm를 넘기지 않아야 냉장고가 제 공간에 들어설 수 있다고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한 관계자는 "건설사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통상 800리터 기준으로 냉장고 빌트인이 설계된다"며 "높이의 경우 윗 마감재와 냉장고 받침 등을 생각할 때 1800mm는 넘지 않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대형 양판점 가전 담당자는 "삼성전자가 대용량 경쟁에만 치중하면서 실생활 기준을 초과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말했다. LG전자와의 용량 경쟁에 몰두하면서 정작 소비자를 망각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5일 "아파트 빌트인 규격과 냉장고 크기가 맞지 않아 일부 환불 및 교환이 있었던 것을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일부에 국한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T9000은 빌트인 타입으로 출시된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 공간 사이즈를 실측한 뒤 제품을 구매하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반면 경쟁사인 LG전자는 910리터(ℓ)짜리 대용량 프리미엄 냉장고 V9100을 출시하면서 시장조사를 선행해 삼성전자와는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
LG전자 내부문건에 따르면 가전 부문을 담당하는 HA사업부는 제품 설계 이전 서울과 부산 등 전국 주요 대도시 84개 가구를 직접 방문 조사해 주방의 냉장고 전용 공간을 실측했다.
더욱이 실제 냉장고를 주로 사용하는 주부들의 평균 키와 팔 길이 등을 고려해 높이를 늘리지 않는 데 주력했다고 LG전자 관계자는 설명했다. 세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를 기반으로 LG전자는 가로 912에 높이 1785, 깊이 910mm의 규격으로 V9100을 시장에 내놨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프리미엄 대용량 제품을 구현했지만 규격에 있어선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앞서가는 삼성전자가 추격하는 LG전자에 돌이키기 힘든 허점을 드러냈다.
◇삼성전자가 지난 7월4일 출시한 대용량 냉장고 지펠 T9000(제공=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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