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국내 후판시장의 지각변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공급과잉'..국내 주력업체 간 경쟁심화
한국철강협회 및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후판(보통강중후판) 국내 생산량은 약 1340만톤 수준이다. 국내 1위인 포스코가 약 750만톤으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동국제강(440만톤)과 현대제철(150만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오는 2014년부터 국내 후판시장의 판도는 바뀔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설비 현황으로 따져보면 2위와 3위 업체인 동국제강과 현대제철이 자리를 바꿀 것으로 보인다. 국내 1위는 여전히 포스코다.
지난 5월 후판시장에서 국내 2위를 지켜오던 동국제강이 노후설비 폐쇄 명목으로 포항1공장을 폐쇄하면서 연산 440만톤 수준에서 340만톤으로 생산량을 줄였다. 반면 현대제철은 후판 생산을 지금(150만톤)의 2배 이상(350만톤) 늘릴 것으로 보여 2013년 국내의 후판 생산규모는 1440만톤이 될 전망이다.
후판 과잉공급으로 인해 오는 2013년 생산능력 과잉비율이 지난 2년간 5%대를 유지하던 것과는 달리 7%대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렇게 되면 줄곧 시장의 3위 자리를 차지해오던 현대제철은 시장의 23~24%를 차지하게 되면서 동국제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반면 동국제강은 시장점유율 10%정도를 뺏기면서 현대제철과 직접적인 판매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에서 후판 공급과잉으로 인해 구매자 시장(Buyer's market)으로 주도권이 이동한 지 오래지만 살아남기 위해 경쟁적으로 설비 증설을 이어가는 분위기"라며 "조선산업 수요 호조나 동아시아 철강사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기 이전에는 큰 폭의 후판 수급 개선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조선업의 불황으로 후판의 수익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후판 공급가격을 두고 철강업계와 조선업계 간의 신경전이 더욱 치열해진 이유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조선업계보다 철강이 더 어렵다"고 언급하는 등 양 업계는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다.
◇현대제철 공세에 동국제강 활로찾기
현대제철이 3고로를 계획할 때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당시에는 조선업계의 후판 증설 요구가 있었고, 포트폴리오 다양화 측면에서 후판 생산을 늘렸다는 설명이다.
매 분기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의 갈등을 남의 집 불구경 하듯 관망하던 현대제철은 최근 들어 후판 판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최근 3분기 기업설명회(IR)에선 후판 판매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의 1후판 공장에서는 대형 사이즈를 주로 생산하고, 2후판 공장이 완료되면 수요자의 요구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품목 위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이 자신감을 내비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봉형강 분야에서 세계 수준을 자랑하는 현대제철은 조선업체에 봉형강과 철근, 후판까지 일괄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포스코나 동국제강 같은 라이벌 업체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제철의 자신감에는 역시 믿는 구석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한 식구였던 현대가(家)의 현대중공업을 두고 나오는 이야기지만 상선 시장이 움츠려든지 오래인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에 의존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동국제강은 조선업계의 수요 부진과 업체 간 과열된 경쟁으로 후판 가격이 추가 하락하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대제철의 후판 공급 증설에 대비는 해왔지만 계속되는 불황으로 걱정은 커져가고 있다.
지난 10월 말 열린 싱가포르 컨퍼런스에서도 시장의 관심은 역시 심화된 후판시장의 경쟁구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측은 고부가가치 조선사와의 협력 강화 및 고급 강종 개발 등을 통해 지금의 판매처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판매망 확보를 위해 사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후판시장의 수익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요시장"이라면서 "동국제강이 브라질 고로에 공을 들이는 것도 후판의 원재료인 슬라브 부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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