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태가 가관이다. 그야말로 눈 뜨고 차마 못 봐줄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대검 간부 이하 일선 검사들은 한상대 검찰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고, 사실상 쿠데타 상황에 직면한 한 총장은 사퇴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한 총장 뒤에는 대통령 퇴임 이후를 걱정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엄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정권교체를 앞두고 검찰 내부에서 친이계와 친박계로 나뉘어 권력다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무슨 조직폭력배들이 두목 자리를 놓고 백주대낮에 패싸움을 하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다.
하긴 검찰조직의 문화가 조직폭력배와 비슷하다는 건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은 폭력행사의 정당성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차이 밖에 없다. 조폭은 그런 정당성이 없는 것이고.
최근 연달아 터진 김광준 부장검사의 9억원대의 금품수수 사건, 이제 막 수습중인 1년차 검사의 피의자 성폭행 사건, 윤대해 검사의 개혁위장쇼 등에 대한 부끄럼도 없이 서로가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떼마냥 '희생양'을 찾아 나서고 있다.
28일 오후부터 29일 오전까지의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 검찰에게는 더 이상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그들에게는 오직 조직이기주의만 가득하다.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리해놓고 가자. 이번 사태는 무언가 의미있는 검찰개혁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 절대 아니다. 조직의 생존을 위한 조직이기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이 상황에 이르러 그 많은 검사들 중에 '정권의 주구(走狗)' 노릇을 했던 지난 5년에 대한 진지한 반성문 하나 쓰는 '현직 검사'가 없다. 진심으로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는 개혁방안을 제시하는 '현직 검사' 한 명이 없다.
누구 하나 예외없이 통째로 썩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늘 들이대던 자기정당화 논리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검사동일체의 원칙'이었다.
그런데 검찰 조직의 최고봉에 서있는 검찰총장더러 물러나라고 요구한 마당에 검사동일체 원칙에 기대어 변명할 여지도 사라졌다. 더는 비겁하게 검사동일체의 원칙 뒤에 숨을 수도 없게 됐다.
썩어도 이렇게 썩은 집단이 대한민국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안하무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기관도 없다. 상황이 이 정도 되면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통렬한 자기 반성문 하나 쯤은 나와야 정상 아닌가?
상황을 정리해보자.
한상대 검찰총장은 28일 오후 9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김광준 부장검사에게 언론대응 등을 조언했다는 이유로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그런데 30일에는 검찰총장이 개혁방안을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검 중수부 폐지 여부를 둘러싼 갈등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제 오후 현장기자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난 후 필자의 뇌리에는 '희생양 찾기'가 스쳐지나갔다.
아닌게 아니라 희생양으로 몰린 최재경 중수부장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총장 진퇴 문제 등 검찰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견대립이 있었고 그것이 오늘의 감찰조사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며 "감찰조사를 승복할 수 없다. 향후 부당한 조치에는 굴하지 않고 적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혀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을 파기했다.
그렇다고 최 중수부장이 무슨 거창한 개혁을 내건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반개혁에 더 가깝다. 최 중수부장은 정치권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 논의가 나오자 이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열며 반발했던 장본인이다.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있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연루된 'BBK 사건' 수사를 맡아 관련자 대부분을 무혐의 처분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있으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최 중수부장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밤 사이 상황은 반전했다. 대검 간부들과 일선 지검 부장검사들 사이에서 검찰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한 총장이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9일 오전 대검 간부들이 사퇴를 요구했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은 대검 간부들의 사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신들이 사퇴를 요구하겠다고 나섰다. 29일 정오까지로 시한도 못박았다.
그러자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나도 죄인"이라는 게 이유다.
그런데 일선 부장검사들이 요구한 시한이 가까워지자 한 총장은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도 계속 진행하겠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이번엔 1년차 검사의 성폭행 사건으로 자진사퇴한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이 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석 전 지검장은 "현재가 검찰의 최대 위기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런 비리, 비위사례들이 계속 누적되어온 데다가 그간 검찰이 사건수사나 제도운영에서 보여준 무소불위와 오만함, 구성원들의 특권의식 등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반감이 폭탄돌리기 식으로 계속 이월되어 왔고 특히 현 총장 취임이후 소통부족과 일방적 독주로 인해 내부 구성원간의 갈등, 심리이반 현상 등이 극심해지면서 이제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는 현재 외부에서 거론되는 검찰개혁방안이 상당부분 일리가 이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제도론적 개혁을 현 시점에서 신망이 떨어진 현 총장이 검란 사태의 수습책으로 불쑥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내부동의나 추진동력을 모으기도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석 전 지검장의 진단은 옳다. 그런데 현직에 있을 때는 무엇했는가? 검사동일체의 원칙 때문에 할 말 못했나? 하긴 검찰이라는 조직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 힘든 그런 조폭문화와 비슷하기 때문에 할 말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석 전 지검장의 주장에 동의한다. 맞다. 한 총장은 30일로 예정된 검찰개혁방안 발표를 중단해야 한다.
현재 추진중인 한 총장의 검찰개혁 발표는 그 자체로 선거개입이다. 청와대가 배경에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한 스스로 법령을 개정할 권한도 없는 검찰이 개혁방안을 발표한다면 누구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 총장 하나가 물러난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 총장에게 항명을 한 최 중수부장의 경우 반개혁적인 태도를 명확하게 드러낸 마당이다. 이들이 검찰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두어서도 안된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누구 하나 사퇴한다고 사태가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대검 간부 전원이 사퇴하라!
이들이 없다고 일선 검찰이 할 일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간부들의 사퇴로 자기 할 일 제대로 못한다면 그런 조직은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물러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헛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청와대가 그런 논리로 한 총장을 엄호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관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네티즌들의 댓글까지 감시할 정도로 삼엄하게 선거관리를 하고 있다. 거기에 전국적으로 엄청난 조직을 갖고 있는 일선 경찰에서 열심히 부정선거를 감시하고 있고, 일선 검찰에서도 두 눈 부릅뜨고 있을 것이다.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이하 대검 간부들이 없다고 대통령 선거 하나 못치르는 정도의 수준 낮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한 총장이 사퇴를 요구한 대검 간부들에게 "같이 사퇴하자"고 했다고 한다. 한 총장의 주장은 옳다.
국민들의 이익과는 무관한, 조폭들의 백주대낮 패싸움에 가까운 목불인견의 행태에 가담한 검찰총장, 대검 간부 전원,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상급부서인 법무부장관 등 모든 관련자들은 사표를 제출하라!
권순욱 정치사회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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