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아름기자] #아파트 상가에서 네일샵을 운영하는 이씨(28)는 급하게 1000만원 가량이 필요해 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대출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창구직원은 대신 마이너스 통장을 권했다. 이씨는 결국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필요한 돈을 꺼내 써야만 했다. 이씨는 “여전히 나이가 어리거나 자영업자라면 은행 대출을 이용하기 어렵다”며 “결국은 은행이 원하는 사람만 대출을 해주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50대 주부인 신씨는 시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몸이 안좋아져 급하게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적금을 해약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은행 직원은 목돈을 해지하는 것이 아깝다며 적금 담보대출을 받으라고 권했다. 간단한 대출 방식에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적금 담보대출을 쓰다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이 돼버렸다.
신씨는 “아이들 학자금과 결혼 자금을 위해 아껴 모아놓은 돈인데 어느새 너무 많이 줄어버렸다”며 “차라리 애초에 적금을 해약하는 것이 나을뻔 했다는 생각에 대출을 권한 직원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생계형’ 대출이라고 불리는 마이너스 통장과 예·적금 담보대출이 급속히 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생계비조차 대출에 기대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데다 은행들이 용도가 분명치 않은 가계대출을 규제하면서 소액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이너스 통장이나 예적금 담보대출을 권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통장과 예·적금 담보대출 등이 계속 증가할 경우 가계부채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 규모는 모두 937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하는데 그쳤다. 은행과 저축은행의 대출 증가폭이 감소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율은 1년째 감소세다.
반면 마이너스통장 대출, 예적금 담보대출 등 기타대출은 같은 기간 7000억원 증가한 103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실제로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국내 9개 시중은행의 10월 말 기준 마이너스통장 대출 잔액은 39조59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6월 말에 비해 약 5800억원이나 증가한 규모다.
하나은행은 6월말 7조842억원이던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10월말 7조1231억원으로 증가했고, 우리은행은 5조783억원에서 5조1253억원으로 늘었다. 농협은행의 경우 6월말 기준 4조6896억원에서 5달만에 4조9363억원으로 무려 2467억원이나 증가했다.
예적금담보대출은 대부분 시중은행에서 올해 초 수준에서 변동없이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대출한도액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8개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한도는 2010년 12월 말 81조5600억원에서 지난 6월 말에는 92조8700억원으로 13.9%나 늘었다. 이는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약 10%에 달하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신용공여를 늘리고 있는 것은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감소로 생계형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투자가 아니라 소비가 주 목적이기 때문에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 부실화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부진이 가계부채를 확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물가상승, 실질소득 감소로 신용대출 중심의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생계형 가계대출은 대출 과정이 쉽고 간편하지만 담보가 없기 때문에 대출 금리가 높은 편"이라며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지면 위험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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