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50~60대 가장들은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리고 그 가장들의 중심에는 자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집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가 있다.
그들은 전재산을 털어 어렵게 주택을 마련했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에 시세 차익은 커녕 손해만 떠안고 말았다. 시장 침체로 매수심리가 종적을 감추며 대출원리금 부담은 감당 못할 수준이 된지 오래다.
일부는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헐값에 남의 손에 넘겨줘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매달 허덕이면서도 생활비 대신 이자를 낼, 경매로 처분해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집이 없는 세입자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버린 전셋값에 은행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매달 월세처럼 은행이자를 내다보면 전세만기는 덧없이 빨리 다가온다.
전세값 상승분을 마련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일부는 난민이 돼 정든 집을 떠나야 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현재도 주택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없던 사회문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해결은 할 수 있을까." 50~60대 가장들의 선택에는 이같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방에는 없는 하우스푸어, 왜 수도권에만
수도권 주택시장은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환자와 같다. 주택시장 침체에 매수세가 사라지며 거래 흐름이 꽉 막혔다.
지난해 신고일 기준 서울 아파트 총 거래량은 4만2458건으로, 서울시가 2006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2006년 11만6270건이 거래됐던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은 ▲2007년 6만562건 ▲2008년 6만2356건 ▲2009년 7만6530건 ▲2010년 4만5456건 ▲2011년 5만9030건이 신고됐다.
원활하지 못한 시장 흐름은 사회적 질병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부동산 상승기 다소 무리한 대출을 안고 주택을 구매한 소유주는 침체기 가격 하락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
가격 하락분, 대출원리금 등 더 이상의 손해를 막아보려 해도 매각은 쉽지 않다. 손해를 감수하고 집을 팔아봤자 대출금이나 전세세입자의 보증금도 주지 못하는 깡통주택까지 속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과 제2금융권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있는 초고위험 하우스푸어는 2만8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가진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무려 3조3000억원이다.
또 지난해 9월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중 경매낙찰률(평균 76.4%)을 초과한 대출 규모는 13조원으로 전체주택담보대출의 3.3%, 차주는 19만명(3.8%)에 달한다. 당장 자기 집을 경매로 처분해도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사람이 19만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특히 경락률 초과대출은 수도권에 12조2000억원, 18만명이 집중됐다.
허명 부천대 교수는 “주택시장의 선순환 고리가 끊기며 집을 팔아야하는 사람이 집을 팔 수 없는 구조가 되면서 은행빚을 떠안고 살아야하는 신세가 됐다”면서 “하우스푸어는 거래가 순환되지 못하면서 나오는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자측은 하우스푸어 구제를 위해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자기 집의 일부 지분을 매각해 그 대금으로 은행 대출금 일부를 갚는 방식이다.
하우스푸어로부터 지분을 매입한 공공기관(캠코 등)은 지분을 담보로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고 이를 통해 금융기관, 공공기관, 연기금 등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마련하게 된다. 또 하우스푸어로부터 매입한 지분에 해당하는 임대료를 받아 이를 투자자에게 이자로 지급해 운영비를 충당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주택 소유주의 도덕적 해이와 집값 부양에 따른 집 없는 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경계할 대목이다.
경실련은 “공적자금으로 투입한 하우스푸어 해결 비용이 다른 시민들에게 전가되는 결과를 초래해 도덕적 해이와 사회적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박근혜 정부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지난 3년간 지방 5대광역시 아파트값은 25.7% 상승했다. 지방 부동산시장의 선도주인 부산의 경우 44.3%나 치솟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앉아서 아파트 값의 절반에 가까운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주택가격 하락과 거래 실종이 원인인 하우스푸어 문제는 매매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진 수도권에 국한됐을 뿐 이처럼 집값이 오른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용인 동천태양공인 대표는 “하우스푸어가 왜 나왔지를 생각해 보면 결국 주택시장 붕괴에 따른 부작용인데, 집값 하락을 막지 못한다면 하우스푸어도 렌트푸어도 어느 것 하나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보급률 100% 시대에 전세난?..뭐가 잘못됐나
하우스푸어에서 전이된 또 다른 병은 바로 렌트푸어다. 집값은 높고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집값 상승 기대감마저 사라지며 매매 가능 수요가 전세로 눌러 앉았다.
수요가 늘자 전셋갑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전세난이 계절과 시기에 관계 없이 1년 내내 지속되고 있다. 공급이라도 충분하면 괜찮겠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18만5083가구다. 지난해 17만3565가구에 이어 20만 가구를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004년 35만3748가구에 달했던 입주 아파트는 전반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매매전환 포기와 입주 감소는 전셋값 상승을 부추지고 있다. 2009년 5.3% 오른 전국 전셋값은 2010년 8.8%로 급등한데 이어 2011년 14.7% 오르며 전세대란으로 번졌다. 더 이상 오르기 힘들 것이란 예상과 달리 지난해에도 4.2%나 상승했다.
전세난의 진앙지인 강남을 들여다 보면 문제가 어느정도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며 매매수요는 사라지고 전세수요만 늘며 전세값은 크게 뛰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의 전세값은 입주 초인 2009년 6억원에 못 미쳤었으나, 현재 8억5000만원 선에 시세가 형성됐다. 전국 어딜가도 아파트 하나 이상을 매매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못 버티고 강남에서 밀려난 수요는 인근 전세시세까지 올려놓는 역할을 했다.
결국 전세금 상승분을 만들지 못한 세입자는 반전세 계약을 하거나 은행에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누구에게 돈을 주느냐의 차이지 월세세입자나 다름없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지난해(1월~11월말 기준)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무주택 서민에게 지원한 전세자금보증 공급액은 10조269억원에 달한다. 2008년 3조5490여억원 수준에서 2009년 4조4756억원, 2010년 5조7668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이다 전세난이 극에 달했던 지난 2011년 9조3151억원으로 급증한데 이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박 당선인은 렌트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주택인 ‘행복주택’ 공급과 ‘목돈 안드는 전세제도’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현재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철도부지 위에 인공대지를 조성하고 주변 시세의 절반 값에 제공하는 '행복주택' 20만 가구가 이런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인이 대출을 받고 세입자가 이자를 내는 구조로 대출을 한 집주인에게 세제혜택을 제공키로 한 ‘목돈 안드는 전세제도’ 역시 동참할 집주인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세입자의 이자 미납에 따른 신용 하락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증'이나 다름없는 대출을 대신 받기는 쉽지가 않아 보인다.
남영우 나사렛대 교수는 “새정부가 렌트푸어 대책으로 내건 금전적 부담 경감과 임대주택 공급 확충 두 가지 모두 급하게 필요한 정책이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라며 “관계부처와 유기적인 협의를 통해 얼마나 실현가능성을 높일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과거처럼 절대적으로 집이 부족한 상황도 아닌데 전세난이 수년 째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찾아야한다”면서 “매매시장이 제기능을 할 때 전세난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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