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황민규기자] 재계가 올해 투자 및 채용 계획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선제적으로 공격적 투자 계획을 밝힌 LG그룹에 이어 삼성그룹이 인수위와 구체적 협의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경영의 지표가 되는 투자 계획 수립은 자율성 있게 마련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신경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일종의 허니문을 거치겠다는 것으로 대내외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할 디딤돌을 놓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또 경제민주화 광풍 속에 등장한 정부인 만큼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내재된 것으로 분석된다.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LG다. LG그룹은 지난 6일 시설 부문에 14조원, 연구개발 부문에 6조원 등 총 20조원의 투자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전년도 투자액 16조8000억원에 비해 19.1% 늘어난 규모로 사상 최대다. 채용 역시 지난해 규모인 1만5000명 이상을 넘어설 전망이다.
투자 뒷받침에 대한 구본무 회장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됨과 동시에 새 정부에 일종의 '눈도장'을 찍겠다는 행보로 재계는 해석했다. LG그룹은 SK그룹과 더불어 지주사 체제로 이미 전환을 마친 상태라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재벌개혁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재계의 맏형 삼성그룹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14일 <뉴스토마토>와의 전화통화에서 "삼성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기준이 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며 "전해 듣기로는 투자나 채용 규모를 (예년에 비해) 줄일 것 같진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전경련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주요 그룹들의 투자 및 채용 계획을 전달받고 있다"면서 "대내외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룹들마저 허리띠를 졸라맬 경우 (경제위기에 대한 시장의) 불안이 악화될 수 있어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가 전경련을 매개로 투자 및 채용 계획을 전해왔으며 삼성그룹의 경우 직간접적 채널을 통해 인수위와 관련내용을 협의 중이라는 얘기다. 이들 움직임이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을 감안할 때 인수위로선 빠트리지 않고 챙겨야 할 주요사안이다.
특히 삼성그룹의 경우 긴축경영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다른 그룹들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역할이 기대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삼성의 투자 및 채용 확대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피폐해진 서민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인수위는 보고 있다.
삼성그룹은 비공개 채널을 통해 금년 투자 및 채용 계획의 발표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이 예년과 달리 발표 시기를 늦추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대한 시점을 늦춰 박근혜 당선자에 대한 '공'으로 돌리려 애쓰고 있다.
이는 새로 정권을 출범시키는 박 당선자에 대한 예우 차원이자 일종의 화답 성격도 짙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 당선자는 후보 시절 당 안팎의 반발에도 기존 순환출자 금지에 선을 긋는 등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시장의 공정성 복원에 초점을 맞춰왔다. 재벌개혁에 대해선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속도 조절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챙기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삼성그룹은 인수위와의 최종 조율을 통해 이달 말경 올해 투자 및 채용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날 기자에게 "발표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정"이라며 "일단 이번 주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 규모에 대해 "최소한 지난해 수준, 그 이상의 투자가 단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위기 때도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게 기본 생각"이라며 "삼성의 사회적 역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집행을 통해 박 당선자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얘기다.
전자에서만 지난 한 해 매출 200조원, 영업이익 29조원을 넘어서는 등 사상 최대 실적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터라 '곳간'을 닫기에는 명분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여론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삼성그룹은 올해 시설보다는 연구개발에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원화 절상을 감안해 동남아 등 해외에 대한 선행적 투자를 과감히 전개하는 한편 소재 등에 대한 점검도 이뤄질 전망이다.
인수합병(M&A)에 대해서도 언제든 시장의 큰 손으로 나설 준비를 마쳤다. 아울러 그룹의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신수종 사업에 대한 투자도 단계적으로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반도체 설비 부문은 그간 대규모 투자가 이어진 점을 감안해 유지 및 보수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앞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일 신년하례식에서 투자 계획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될 수 있으면 늘릴 것”이라고 답했다. 이 회장의 말이 있은 직후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그룹의 투자 규모가 5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한편 삼성그룹은 지난해 1월17일 47조8000억원의 투자와 2만6000명의 채용 계획을 내놨으며, 투자 집행은 100%에 미치진 못했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서초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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