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염현석기자] SK그룹의 새 경영 체제인 '따로 또 같이 3.0'이 위원회별로 성과를 내면서 그간의 우려를 말끔히 털어내는 모양새다.
SK는 지난해 말 관계사별 독립경영을 강화하는 새로운 경영체제 '따로 또 같이 3.0'을 도입하고,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의장에 최태원 회장을 대신해 김창근 의장을 선임했다.
이를 통해 기존 지주사(회장) 중심의 수직적 위계구조에서 탈피하고 계열사별 수평체제로 전환함과 동시에 각 사에 대한 책임과 자율경영을 강화했다.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라는 최상의 모범답안을 내놨지만 정착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지에 대해선 재계 내에서도 의문이 뒤따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관행을 벗지 못한 우려였다. 최태원 회장이 과감히 영향력을 던졌음에도 각 위원회는 협의체제를 구축하며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최 회장의 결단이 SK그룹의 활로를 열어줬다는 평가다.
물론 일각에서는 여전히 최 회장의 결단 배경에 의문을 품고 있다. 법정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자신의 공백 속에서도 그룹이 나아가야 할 공간을 열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지배구조에 있어 최상의 답을 제시함으로써 법정과 여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해석도 여전하다.
◇부문별 맞춤 글로벌 경영..SK의 '따로 또 같이 3.0'
"그룹 지주사는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주요 계열사 CEO가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결정한다."
◇SKMS(SK Management System)는 SK 고유의 기업문화 및 경영이념, 경영기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1979년 구성원의 합의를 통해 제정된 SK만의 경영 철학이자 경영 시스템입니다.(자료제공=SK그룹 홈페이지)
SK그룹이 글로벌 경영 강화를 위한 전문성 확보와 계열사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를 구성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SK그룹은 새로운 그룹 경영구조 '따로 또 같이 3.0'을 지난 1월1일부터 가동했다. '따로 또 같이 3.0'의 골자는 그룹 회장이 아닌 위원회를 통한 의사결정, 지주회사 중심 경영이 아닌 계열사별 자율경영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2월18일 공식적으로 그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고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이 그룹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의장 자리에 오르며 공식적으로 SK그룹을 대표하게 됐다.
지난 2월6일 그룹 계열사 CEO군을 발굴하고 추천하는 인재육성위원장을 김창근 의장이 겸임하는 등 협의회 산하 6개 위원장 인선이 완료됨에 따라 'SK의 따로 또 같이 3.0' 체제가 본격 출범했다.
이런 SK의 변화는 '책임'과 '전문성' 경영에 방점을 둔 인사로 이어졌다.
SK C&C가 최태원 회장을 등기 이사로 재선임하고,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이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해 책임경영을 한층 강화했다.
'따로 또 같이 3.0' 인사의 한 축인 전문성은 외교 노하우를 통한 SK이노베이션의 글로벌화를 더욱 가속화 하기 위해 신언 전 파키스탄 대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김준호 SK하이닉스 코퍼레이트센터장을 사내 이사로 신규 선임한 것도 전문성 강화의 포석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수천억 원 규모의 의사결정을 모두 회장과 지주회사더러 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라며 "앞으로는 회장과 지주회사에 묻지 말고 계열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것이 새로운 경영구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위원장 교체에도 불구..지속적인 성과 '글로벌성장위원회'
지난 1월부터 출범한 '따로 또 같이 3.0'의 위원회 중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최근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으로 위원장이 교체된 글로벌성장위원회이다.
지난 2월 중국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시노펙(Sinopec)과 함께 충칭(重慶) 부탄디올(BDO)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은 물론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원유탐사를 지속하는 등 SK이노베이션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도 스마트폰 연결형 초소형 빔 프로젝터인 '스마트 빔'이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 C&C 역시 '글로벌 SK' 동참에 한몫하고 있다. 오는 2015년까지 글로벌 매출 비중을 25%까지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해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SK플래닛은 지난 3월 터키 오픈마켓 시장 진출 발판을 마련했다. 터키 도우쉬 그룹과 50%씩 지분을 합작해 설립한 '도우쉬 플래닛'은 현재 'n11.com'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 최대 규모의 수출 실적을 올리며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 규모 600억달러를 달성했다.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SK케미칼, SKC, SK하이닉스 등 제조 부문의 지난해 연간 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약 600억달러(약 64조2000억원)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수출액 600억달러는 SK 창립 이래 사상 최대 규모다.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어섰다.
◇'상생' 강조하는 동반성장위원회..중소업종과 같이 큰다
SK그룹은 '따로 또 같이' 경영방식을 중소 상생협력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각 계열사와 협력업체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를 중심으로 자금·교육·연구개발(R&D) 등 다방면에서 중소 협력사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태원 SK 회장이 평소 강조하던 상생경영·동반성장에 대한 확고한 의지에 따라 개발된 'SK식 상생모델'을 기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SK는 중소 협력사에 직접적 자금 지원을 위해 32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더불어 협력사가 추진하는 R&D, 공장 증설에 지원하는 1000억원 규모의 '목적펀드'도 조성했다.
여기에 'SK동반성장아카데미'를 통해 지금까지 7만명의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 등 협력업체 인재양성에도 힘쓰고 있고 온라인상생지원센터를 구축해 각 관계사의 상생경영 활동 현황과 중소 협력업체를 위한 최신 비즈니스 동향과 경영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SK는 협력사들과 상생경영을 위한 방안으로 2·3차 협력사까지 뿌리내릴 수 있도록 1차 협력사에 대해 2차 협력사와의 상생협력 의무를 명문화했고, 업종과 협력사 현실을 감안해 현금성 결제 조건·구매 우대 등 구체적 지원 프로그램을 제도화했다.
◇SK그룹의 사회적 기업인 '행복나눔 도시락'(자료제곰=SK그룹 홈페이지)
'동반성장위원회'의 또 다른 성과로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육성이다.
우수한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2월 사회적 기업가 양성 MBA과정을 개설했고, 사회적 기업 투자유치를 위해 유치 대상을 국내는 물론 해외로 넓혀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SK행복나눔재단은 지난 25일 서울 동빙고동 사옥에서 '글로벌 드라이브 프로젝트(Global Drive Project)' 발대식을 진행했고 현재 60여개의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거나 창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창의적 인재 발굴' 인재육성위원회..인재 발굴 혁신을 이루다
SK그룹의 창의적 인재 확보를 위한 다양한 채용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기존 채용방식을 통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SK는 학교, 성별, 나이, 학점, 어학점수 등 모든 장벽들을 없앴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 2회째를 맞는 'SK 바이킹 챌린지'는 젊은이들의 끼와 열정, 도전정신만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스펙초월! 열정과 스토리로 무장한 바이킹 인재를 모십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보여주듯 지원서에 학력·학점, 어학점수 기입란이 전혀 없다. 개인 오디션 형태의 예선을 통과한 지원자들이 별도 합숙에서의 임무 수행능력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파격적인 채용 방식이다.
실제 면접장에서는 백 텀블링을 통한 본인 소개, 스리랑카 전통의상을 입고 의료봉사를 했던 경험 소개 등 다양한 방식의 면접이 이뤄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여기에 직무능력 위주의 채용을 위해 지난 2010년 도입한 인턴십 채용프로그램도 정착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SK 인턴십은 일정 기간 현장에서 정식 사원과 똑같이 업무를 받고 능력을 본 뒤 검증된 인턴은 곧바로 그 해 하반기 신입사원으로 채용된다. 매년 전체 인턴의 70% 이상을 신입사원으로 선발하고 있다. 실제 업무 현장에서 탁월한 직무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스펙이 아닌 능력 중심의 채용 프로그램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스펙'이 아니라 '일 잘하는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인턴십을 도입한 만큼, 인턴 선발에는 어학점수나 학점 등을 심사기준에서 원천 배제하고 있고 지원자들의 직무 전문성과 글로벌 역량, 성장가능성 등에 선발 초점을 맞췄다.
SK 관계자는 "SK그룹이 작은 직물공장에서 출발해 매출 150조원이 넘는 회사로 성장한 것은 열정과 패기로 뭉친 창조적인 인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앞으로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이끌 새로운 인재형을 선발하기 위해 종전의 장벽을 허물게 됐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