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과거사관련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가 유일한 증거로 제출된 경우 조사보고서가 모순이 있거나 참고인 진술이 사실과 다를 경우에는 증거자료로 채택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6일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이른바 ‘진도군 민간인 희생 사건’ 희생자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단하면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번 판결은 정리위의 조사보고서가 국가배상의 절대적인 증거자료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소송의 심리·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과거사관련 국가배상소소에서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될 것은 틀림없지만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인정근거나 신빙성 등에 대한 심사 없이 대상자 모두를 국가에 의한 희생자로 인정하고, 국가의 불법행위책임을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조사보고서 자체 판단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스스로 전제한 결정기준에 어긋나는 경우 ▲인정근거로 나온 유족이나 참고인 진술 내용이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과 불일치하는 경우 ▲참고인의 진술이 추측이나 소문을 진술한 것인지 또는 전해들은 것인지 직접 목격한 것인지 조차 식별할 수 없는 경우 등은 증거로 채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원심은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법원이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신실규명결정만을 증거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으나, 이는 피해자들의 살해 사실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증명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과거사관련 국가배상소송에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권리남용이 되기 위해서는 피해자 유족들이 ‘상당한 기간’ 내 권리를 행사한 사실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하해야 하고,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기간 연장을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민법상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 없다”며 “과거사정리법의 적용대상임에도 그에 근거한 진실규명신청조차 없었던 경우에는, 당사자의 배상청구에 대한 국가의 소멸시효완성 주장이 허용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그러나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원고들이 과거사정리법의 규정과 정리위원회의 건의 등에 따라 국가가 그 명예회복 및 피해보상 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했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어 소송을 제기한 것이므로 진상규명결정일로부터 2년 10개월이 지나 소송을 제기했더라도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위자료 산정 기준에 대해 “피해자들 상호 간의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하고, 희생자 유족의 숫자 등에 따른 적절한 조정도 필요하다”며 기존 대법원판겨로 확정된 사건의 위자료 액수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기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는 ▲피해자 본인에 대한 위자료 8000만원 ▲배우자 위자료 4000만원 ▲부모?자녀 위자료 800만원을 인정한바 있다.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9년 4월 박모씨 등 2명이 한국전쟁 당시 경찰관들에게 적절한 법적인 절차에 의하지 않고 끌려가 사망했다고 판단한 뒤 국가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배상을 할 것을 권고했으며, 이에 근거해 유족들이 소송을 냈다.
당시 유족들은 증거자료로 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결정만을 제출했는데 1, 2심 재판부는 진상규명결정을 근거로 사실인정을 한 뒤 “진도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피해자들을 사살했다”며 숨진 피해자에 대해서는 1억원, 배우자는 5000만원, 자녀들에게는 10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국가가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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