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김영택기자] LG가 20일 창조경제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삼성에 이은 10대 그룹의 두 번째 창조경제 대열 동참이다.
정·재계는 일단, 정부 출범 초기인 만큼 LG가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열풍에 따라 국회 입법과 정부 정책에 날이 서 있고, 여론도 이른바 '갑의 횡포'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인 만큼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나머지 10대 그룹들의 당혹감은 커졌다. 이미 정부의 직간접적 압박에 못 이겨 올해 투자 및 고용계획안을 내놓은 상황에서 “더 이상 내놓을 게 어디 있냐”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면서도 일부 그룹들은 뒤늦게나마 추가 구상에 돌입했다. 모난 돌이 되기는 싫다는 얘기다.
◇LG “삼성에 질 수 없다”..연구개발 '늘리고' 내부거래 '줄이고'
LG는 이날 마곡 산업단지 내 구축될 LG 사이언스 파크를 첨단 융·복합 연구단지로 만들기 위해 8000억원을 추가 투자키로 했다. 2020년까지 투입될 총 투자 규모는 기존 2조4000억원에서 8000억원 증액된 3조2000억원으로 늘게 된다.
또 4만여㎡(1만3000여평)의 부지 추가 확보에도 나서기로 했다. 총 규모는 17만여㎡(5만3000여평)에 이른다. 8월 분양공고 후 서울시에 ‘마곡 R&D단지 부지 추가 신청계획’을 공식 제출할 계획이며, 이달 중 서울시와 관련 협의에 착수키로 했다. 2020년 최종 완공을 목표로 내년 착공에 들어가 2017년부터 단계별로 준공된다.
단지에 입주할 계열사도 기존 6개사에서 11개사로 대폭 확대된다. 이에 따라 사이언스 파크에서 근무하게 될 연구개발 전문 인력이 기존 2만여명에서 3만여명으로 1만여명 늘 것이라고 LG그룹은 전했다. 사실상 LG그룹의 역량이 총결집되는 셈이다.
동시에 SI(시스템통합), 광고, 건설 분야에서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을 축소, 이를 중소기업에 개방키로 했다. SI 2300억원 등 3개 분야를 합쳐 연간 4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직접발주와 경쟁입찰이 5 대 5로 진행된다. 일감 몰아주기 비판에서 벗어나면서 대·중소 간 상생을 실현하겠다는 전략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구본무 회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됐다”면서 “연초 계획한 투자와 고용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한편 협력사와 힘을 모아 시장선도를 위한 기반 조성과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중소기업의 경쟁입찰 참여 기회를 늘리고, 다양한 사업 간 융복합 연구를 확대해 스스로 시장을 창출해 내는 제품을 많이 만들어 창조경제 토대 마련에 적극 기여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발표와 동시에 “창조경제 활성화에 본격 나섰다”고 자평한 이유다.
앞서 삼성은 13일 향후 10년간 1조5000억원을 출연해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4대 기초과학 분야와 소재기술, ICT(정보통신기술) 융합형 창의과제 지원 등 3대 미래기술 육성 프로그램을 중점 추진함으로써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을 근원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설명이다.
이어 15일엔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5만명 양성’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올해부터 향후 5년간 매년 2000명씩 총 1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재단 설립이 ‘투자’라면 인력 양성은 ‘채용’과 연결된다. 근저에는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은 이르면 금주 중으로 ‘동반성장’ 실천안을 내놓는 것으로 창조경제 활성화 대책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계획이다.
◇"도대체 뭘 더"..나머지 10대그룹, 눈치보다 동참할 듯
그러자 나머지 10대 재벌그룹들이 비상이 걸렸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한 직후 삼성과 LG 순으로 화답을 내놓자 “우리도 뭔가 내놔야 되는 것 아니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을 구성, 박 대통령 방미를 수행하고 공식 대면식을 가진 이후라 난처함은 더욱 극심한 형편이다. 다수의 그룹들이 추가 대책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몇몇 그룹들은 삼성에 눈을 흘기기도 했다.
당초 재계 1, 2위인 삼성과 현대차만이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계획 등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박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의 만남을 계기로 삼성이 적극적으로 화답에 나서면 어쩌나는 얘기였다. 자금 여력 문제로 좇아갈 수 없는 처지라 선택의 폭도 좁다고 말했다.
먼저 현대차는 방미 전 대규모 투자계획을 통해 새 정부의 창조경제에 화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자동차용 첨단소재 개발을 위해 총 1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안을 내놨다”며 “연간 투자계획을 이미 세워놨지만 정부의 창조경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해 투자규모를 대폭 늘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비롯해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대학생 창업 지원,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꾸준히 실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금 나와라 뚝딱’ 한다고 안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며 “투자 등을 대폭 확대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재강조했다.
SK그룹도 사정이 비슷하다. SK그룹 측은 “투자나 일자리 창출, 동반성장 등에 있어 정부의 요구가 있을 때만 ‘보여주기식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닌 그룹의 장기과제로써 지속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삼성과 LG의 화답을 ‘보여주기식’으로 표현, 불편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정부 눈치도 살핀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확산에 동참하기 위해 추가로 구상 중에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지난 8일 있었던 ‘행복동행’ 선언을 강조했다.
SK의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지난 8일 창조경제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1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 증액을 발표했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이 사회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행복동행’을 선언하면서 투자는 물론 일자리 창출과 관련 산업의 발전 등 전 분야에 걸쳐 힘쓰기로 이미 밝혔다는 얘기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잇단 재벌그룹들의 화답에 “부담스럽다”고 속내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비상경영상황 하에서 현재 각 사별로 시나리오 경영을 하고 있다”고 힘든 상황을 전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1월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함으로써 10대 그룹 고용 개선의 물꼬를 튼 것도 강조했다.
포스코와 롯데, GS, 현대중공업 등 다른 10대 그룹들은 아예 말을 아꼈다. 재계에서는 “총수가 구속 중인 SK와 한화가 가장 곤혹스러울 것”이라며, 이들의 동참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고 있다. '총수 리스크'에 묶여 있는 만큼 어떤 방향으로든 대책을 마련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여기에다 포스코의 경우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 롯데는 문제가 되고 있는 유통재벌의 선두주자, GS는 허창수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화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한진 등도 마지막까지 눈치작전을 벌이다 일부 그룹들의 동참이 가시화되면 대열에 함께 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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