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아고라 경제대통령'이라는 필명을 통해 숱한 화제를 뿌렸던 미네르바가 결국 검찰에 체포됐다.
미네르바는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공고와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무직 남성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의 여론쏠림 현상과 이명박 정부의 무능에 따른 대중의 불안심리가 '미네르바 신드롬' 만들어냈다고 진단했다.
◇ 한미통화스와프 예측 적중
미네르바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급부상한 것은 지난 여름.
그는 지난해 8월25일 아고라에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산은이 500억 이상 부실자산을 떠안게 된다"고 썼다. 이 시점은 미국계 투자은행(IB)의 상징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신청을 하기 열흘 전으로 이같은 주장은 누리꾼들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뒤 상황은 급반전됐다.
글로벌 IB 인수를 통해 한국 투자은행 역사를 새롭게 쓰겠다던 산업은행이 9월10일 돌연 리먼브러더스 인수포기를 선언했고, 그로부터 나흘 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한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
이후 누리꾼들은 그를 주목했다.
앞선 8월29일 "환율이 9월 하반기에 1200선까지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 대목도 뒤늦게 부각됐다. 실제로 지난해 9월30일 환율은 1207을 기록했다.
'미네르바 예언'의 백미는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이다. 그는 10월6일 "한미 통화스와프를 통해 300억달러를 조달하지 않으면 환율이 1400까지 오른다"고 경고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내내 상승세를 보이던 환율은 같은 달 23일 결국 1400선을 돌파했다. 일주일 뒤, 정부는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고 환율은 1200대로 낮아졌다.
이처럼 굵직한 경제 이슈에 대한 미네르바의 예측이 맞아 떨어지자 그는 누리꾼들로부터 '아고라 경제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급부상했다. 언론과 누리꾼은 그가 쓴 글에 즉각 반응했고, 정부도 미네르바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네르바의 정체를 둘러싼 각종 추측도 난무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정보당국은 "미네르바는 50대 초반의 해외 거주 경험 있는 전직 증권사 직원"이라는 정보를 흘렸다. 미네르바가 전문성과 연륜을 갖춘 경제전문가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는 하반기 한국경제의 최대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 처벌 논란 확산
그러나 결국 미네르바는 증권사 근무는커녕 경제학을 전공한 적조차 없는 30대의 무직 남성으로 밝혀졌다. 이를 둘러싸고 '아고라'에서는 "미네르바는 여러 명이다", "지금 체포된 미네르바는 다른 사람의 글을 대신 올려준 것 뿐이다", "여론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희생양이다" 등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증권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마저도 "전문대졸 학력의 비경제학 전공자가 그런 식견을 갖고 글을 썼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토로할 만큼 미네르바의 진위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에 체포된 박모씨가 미네르바라고 확신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9일 "미네르바를 사칭한 네티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세간에서 관심을 끈 미네르바의 글은 체포된 박씨가 모두 쓴 글이 확실하며 진짜 미네르바가 따로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미네르바가 인터넷상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도 글을 올린 것이 명백하다며 거듭 사법처리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미네르바 처벌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검찰이 법을 내세워 '표현의 자유'를 옥죄려 한다는 지적이다.
◇ '난세'가 '영웅' 만들어
전문가들은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여론 쏠림현상과 현 정권의 경제리더십 실종이 미네르바 신드롬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네르바 신드롬을 떠받쳤던 두 가지 축으로 '후광효과( halo effect)'와 '확신편향(hindsight bias)'이 지적됐다.
후광효과란 사회심리학 용어 중 하나로,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에는 그 사람의 순수한 능력 뿐 아니라 사회적 배경이나 주변의 견해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뜻한다.
'전직 증권맨'과 '50대'라는 잘못된 정보가 대중들에게 직업적 전문성과 연륜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며 글의 신뢰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확신편향'이란 일단 어떤 사람의 주장이 맞다고 믿게될 경우 이를 기본전제로 삼은 뒤, 나중에 추가 정보를 접할 때 기존의 전제에 부합되는 것만을 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7월14일 미네르바는 "하반기 물가가 오르니 6개월치 생필품을 미리 사두라"고 했지만 지난해 8~11월 소비자 물가는 4개월 연속 하락했다. 미네르바 신드롬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같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현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미네르바 신드롬을 부채질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난세'가 '영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흔들리며 대중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성향이 커진다"며 "이같은 심리가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기반을 통해 쏠림현상으로 나타나면서 미네르바 신드롬이 확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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