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아베노믹스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논쟁이 치열하다.
2% 물가 상승률과 명목 3% 성장을 목표로 하는 '아베노믹스'는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드는 '근린궁핍화정책'이라는 오명과 일본과 세계 경제 성장에 보탬이 되는 정책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아베노믹스를 바라보는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다.
우선 일본은행(BOJ)이 엄청난 양의 자산을 매입하면서 급증한 유동성이 '핫머니'를 양산해 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일본 내 풀린 유동성이 핫머니 형태로 다른 나라에 유입되면 자산버블과 물가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엔화가 시중에 풀리면서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 일본과 수출 시장이 겹치는 나라들은 가격 경쟁력 저하를 경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반대로 세계 3위 경제국인 일본 경제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수요가 살아나면 궁극적으로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론도 만만치 않다.
◇아베노믹스, 주변국 수출 경쟁력에 악영향
아베노믹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라는 주로 일본의 이웃인 대만, 중국, 한국이다.
이들 아시아국들은 수출로 먹고살기 때문에 주변국 통화가 약세를 띠면 그만큼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러 대비 신흥국 통화 추이 <사진제공=동양증권>
실제로 지난 1분기 대만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엔화 평가 절하로 수출이 부진했던 탓에 전년 대비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인 3.1%와 지난해 4분기의 3.7%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엔저 현상으로 대만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세계경기 둔화로 대만의 성장세가 주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엔저로 중국의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지난 중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7.7%로 예상치인 8%에 밑돌았다.
쟝 하오촨 푸단 대학 일본연구센터 연구원은 "아베노믹스는 7월 선거전 아베 총리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하지만 만약 엔화가 계속 낮은 수준에서 머무르면 중국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위안화를 평가 절하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한국이나 중국 등 일본의 주변국들이 엔화 약세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독일도 엔저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가세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엔저, 한국 경제 성장에도 악재
CNBC에 따르면 지난 6개월 동안 달러 대비 엔화가치는 16.6%가량 떨어졌고 원화는 2.7% 하락했다. 지난 1년 동안 엔화 값은 원화보다 22%가량 떨어졌다.
이러한 엔저 특수로 일본의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성장률의 절반 정도가 엔저에 기인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같은 기간 한국은 1.5%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일본은 제조업과 철강 반도체 분야 등 산업에서도 엔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일본의 지난 4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1.7% 증가했다. 이는 같은 한국 산업생산이 0.8% 증가한 것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이다.
지난 12월 아베 신조가 총리로 당선되면서 들고온 아베노믹스로 엔저가 가속화되는 시점을 전후로 일본의 산업이 살아나기 시작한 셈이다.
◇한국·일본 4월 산업생산 <사진제공=통계청>
전문가들은 엔저 현상이 이어지면 일본과 같이 고부가가치 상품을 수출하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각 기관이 내놓은 비교우위지수(CA) 분석을 보면 한국은 엔저로 세계 시장에서 일본 제품에 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라별로 보면 미국 시장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기계, 자동차, 정밀기기 부문 등에서 비교열위가 심화되고 IT 부문은 격차가 축소될 수 있다.
중국 시장에서는 철강, 기계, 자동차 부문에서 일본의 비교우위가 더 확대될 것으로 분석됐고 조선과 IT, 정밀기계 부문에서는 양국 간의 격차가 좁혀질 것으로 조사됐다.
유럽연합(EU) 시장에서도 철강제품, 기계 IT, 자동차 분야에서의 대일 비교열위 상태가 심화되고 정밀기기는 양국 간 시장 경합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종합하면, 환율 변화에 따른 수출량 변화는 1~2분기 정도 시차를 두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올 2분기부터 엔저 효과가 본격적으로 수출시장에 반영되면 한국 수출기업들의 손해가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엔저에 대항하기 위해 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글로벌경제실장은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라며 "일본과 지속해서 경쟁하기 위해 기업의 생산성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주변국 자산버블 양성소?
엔화가 싸지면서 투자자들이 외국 채권과 주식을 사들이는 '엔캐리트레이드'가 확대되면 주변국에 버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들이 강력한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마당에 엔저로 엔캐리트레이드가 가속화되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유동성이 세계경제 전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아베의 세 가지 화살에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결국 세계에 '핫머니' 형태로 투입된 자금은 청산되고 이는 버블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한국이 걱정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중국 중앙은행은 일본의 양적완화로 자국에 핫머니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도 앤캐리 거래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일본은행(BOJ)의 양적완화가 금융뿐 아니라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BOJ의 통화팽창 정책이 주변국 시장으로 흘러들어 자산버블과 물가상승 등의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도 BOJ의 양적완화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엔화가 급격하게 평가절하되면 일본인들은 엔화를 해외로 옮기려고 할 것"이라며 "이 경우 엔화 가치하락은 산사태처럼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베노믹스, 세계 경기 회복에 도움..실패시엔 역효과
아베노믹스는 대내적 경기부양일뿐 주변국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엔저 여파로 수출국들이 손해를 보겠지만 세계 경제 3위국인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 수요도 늘어나 결국 아베노믹스가 세계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베느와 쾨레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아베노믹스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오르면 결국 세계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아베노믹스 긍정론에 합류했다. 그는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일본경기가 살아나고 전 세계가 무기력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가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지만, 실패시 일본 경제가 다시 침체되면서 세계 경제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실패로 일본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면, 국채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가 오르면서 가뜩이나 빚이 많은 일본 정부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일본중앙은행(BOJ)에 따르면 국채금리가 1%일 때 올해 일본 정부의 이자 부담은 9조9000억엔이나, 금리가 1.5%로 올라가면 이자 부담은 10조6750엔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BOJ도 문제다. 총 자산 중 국채비중이 25%로 선진국 평균보다 5배나 많는 상황에서 국채금리 올라가면 일본 주요 은행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전문가들은 또 세계 곳곳의 투자했던 일본인 큰손들이 해외 자금을 한꺼번에 회수해가면서 거품이 확빠지게 되면 세계 경제도 일본과 함께 침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주옥 키움증권 투자전략 팀장은 "일본은 지금까지 해외자산을 약 3조달러 정도 매입해왔다"며 "때문에 아베노믹스가 실패로 끝나면 자금이 일본으로 바로 회수되는 일은 없겠지만, 그 규모만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은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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