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국회에서 25일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NLL 논란을 처음 제기한 서상기 의원이 공개 발언을 신청했다.
그런데 서 의원이 마이크를 가져와 막 말을 하려는 순간, 최경환 원내대표가 “오늘은 상임위 때문에 일정이 바쁘니 공개 발언은 넘어가자”고 가로막았다.
NLL 논란이 결국 사실무근으로 판명돼가면서 처음으로 '불을 지른' 서 의원이 또다른 무리수 발언을 할까 염려한 최 원내대표의 '방어행동'으로 해석됐다.
서 의원은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지만 당혹스런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 그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내내 침묵을 지켰다.
이날 원내대책회의는 '민생'이 중요하다며 NLL 논란을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냈다.
◇기세등등 새누리, 25일부터 기류 급변
노무현 전 대통령 NLL포기 발언 의혹의 주역인 서상기 의원,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가 눈에 띄게 차가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전만 해도 새누리당의 영웅이었다.
민주당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 압박으로 수세에 몰려있던 새누리당은 서 의원 덕분에 일거에 이슈를 반전시켜 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
서 의원은 지난 20일 “공식 자료(대화록 발췌문)를 정보위 소속 의원들과 검토한 결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전격 폭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발언록을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내용의 말과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했다. NLL포기가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완전히 배신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지도부를 비롯한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도 너나없이 서 의원과 그의 폭로를 부각시켜 나갔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서상기 위원장을 비롯한 정보위원들이 NLL 관련 발언 열람이 있었다. 그것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NLL 관련해서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큰 혼란과 국론분열을 가지고 온 소모적인 논쟁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민주당에 대화록 원문 공개를 요구했다.
김재원, 심재철 의원 등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라며 NLL 포기 발언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새누리당의 융단폭격에 결국 김한길 민주당 대표, 문재인 의원 등은 "어리석지만 어쩔 수 없게 됐다"며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역제안했다.
이때 남재준 국정원장이 나섰다. 그는 24일 발췌록과 전문의 비밀등급을 해제하고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에게 문건을 전달했다.
여당과 국정원에 유리하게 임의로 편집한 발췌록과 전문을 전격 공개함으로써 국정조사 요구를 일거에 덮으려는 시도였다.
이때까지도 새누리당은 서상기 의원과 남재준 원장을 추켜세운다.
민주당이 남 원장을 대통령기록물법, 국정원법을 어겼다고 거세게 비난하자 김태흠 새누리당 대변인은 “대화록 공개는 남 원장의 고심어린 결단으로 본다. 진실을 밝혀 소모적 논란을 종식시키고, 국민들에게도 역사적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남 원장을 옹호했다.
◇ 대화록 임의 편집 의혹..역풍 눈앞에 둔 새누리
그러나 새누리당은 대화록을 전달받고 내용을 살펴본 뒤부터 기류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새누리당은 대화록을 전달 받은 즉시 공개하겠다던 엄포와 달리 대화록 공개 여부를 놓고 긴 내부회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전문 공개는 민주당과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물러선다. 처음으로 외부에 드러난 새누리당의 발빼기다.
대화록에는 “의원직을 건다”던 서 의원의 장담과 달리 NLL 포기 발언이 없었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전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하는 굴욕적인 형식으로 회담이 이뤄졌다”던 서 의원의 주장마저 사실이 아니었다.
서 의원의 주장을 믿고 NLL공세를 키웠던 새누리당은 정작 문건을 확인하고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진 셈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을 계속 펴면서 추이를 살핀다.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에 가서 영토주권을 북한 정권에게 사실상 상납하는 충격적 발언을 했다"며 있지도 않은 모함을 계속 했다. 그러나 민주당에 NLL포기 발언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던 기세는 완전히 사라졌다.
◇ 새누리당, 출구 전략 준비중..서·남 버리나
새누리당은 현재 NLL 논란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5일 새누리당은 “NLL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민생 국회로 돌아가자”는 뜻을 민주당에 전달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듯 국정원 국정조사도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국정원 여직원 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국정조사를 절대 할 수 없다던 입장이었다.
서상기 의원, 남재준 원장과도 선을 긋고 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서 의원의 대화록 전문 공개에 대해 극히 말을 아끼며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 NLL포기 의혹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정보위원장으로서 참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개인의 행동'임을 부각했다. 이밖에도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사태 책임을 서 의원 개인에게 돌리려는 눈치가 역력하다.
남재준 원장도 새누리당의 보호를 계속 받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화록 공개의 주역인데다 NLL 포기발언이 사실이 아닌 이상 희생양이 필요한 새누리당으로서도 끝까지 남 원장을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열린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야당의 거센 비난에 대응하는 여당의원들의 지원사격은 미지근했다.
홀로 궁지에 몰리던 남 원장은 결국 “야당이 자꾸 공격하니까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대화록 전문 공개를) 했다”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서상기 의원, 남재준 원장의 사퇴를 정식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자기 입으로 사퇴를 약속한 서 의원과 국정원 개혁이 시작되면 첫 타겟이 될 남 원장은 NLL에서 탈출하려는 새누리당의 제물이 될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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