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곽보연기자] 미래 산업의 지도를 바꿀 3D 프린터 산업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면서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일본과 중국까지 뛰어들면서 차세대 제조업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됐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지난 20여년간 민간 차원에서 축적된 3D 프린터 관련 노하우를 기반으로 최근 정부가 강력한 육성의지를 표명, 집중투자에 나서면서 후발 주자들과의 격차를 더 벌려나가는 모양새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 민간 차원의 뒤처진 기술력을 정부 주도로 뒤따라 잡고 있다. 정부의 장기적 안목과 체계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민간 부문의 활성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가 의지를 보이면서 민간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걸음마 수준이다. 이제야 3D 프린터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직 관련학계 등 일각의 주장으로 치부하는 기류가 강하다. 정부가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다지만, 민간 부문은 3D 프린터가 몰고 올 태풍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종주국' 미국, 제조업 부흥에 사활
지난 198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3D 프린터가 개발된 미국은 3D 프린터의 '종주국'으로 불린다. 세계 3D 프린팅 시장을 선도하는 스트라타시스, 3D 시스템즈 등 주요기업 상당수가 미국에 포진하고 있다. 컨설팅기관인 홀러스 어소시에이츠(Wohlers Associates)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세계 3D 프린팅시장의 38.3%를 차지했다.
주요기업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진행돼 공룡급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3D시스템즈는 지난 2년간 24건에 달하는 M&A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현지시각)에는 프랑스의 금속 3D 프린팅 업체 '피닉스 시스템'을 인수하며 경쟁자들과의 차별화에 나서기도 했다. 세계시장 1위인 스트라타시스도 지난해말 2위 업체인 오브제(Objet)와 인수합병을 완료해 '메머드급 플레이어'로 우뚝 섰다.
◇스트라타시스가 캐나다의 콜 이콜로직과 함께 개발한 세계 최초의 3D 프린트 자동차 '어비(Urbee)'(사진=콜 이콜로직 홈페이지)
미 정부도 이들의 든든한 후견인이다. 올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3D 프린팅을 언급하며 "모든 것의 생산방식을 바꿀 잠재력을 가진 혁신기술"로 평가하기도 했다. 저임금의 매력에 빠져 제3세계를 전전하던 기업들이 자국으로 회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높은 R&D 역량과 기술력은 3D 프린팅 산업에서 새로운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 구성한 '첨단제조 파트너십(Advanced Manufacturing Partnership) 위원회'를 통해 미국의 산업 발전을 이끌 첨단 제조업 전략을 수립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직접 제조업을 키워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차세대 산업 환경에서도 글로벌 경제 절대 강자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GE, 보잉 등 대기업들도 3D 프린팅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추세다. 자동차나 항공기 부품을 3D 프린터로 제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GE는 3D 전문기업인 모리스테크놀로지 등 2개 기업을 인수해 별도의 연구센터를 설립, 2020년까지 10만 종류의 제트엔진 관련 부품을 생산하기로 확정했다. 보잉은 3D프린터로 군용기·여객기의 2만2000여개 부품을 만들어 공급할 방침이다.
미국은 기업뿐만 아니라 학계의 기여도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ETRI에 따르면, 미국 최고의 대학인 MIT·하버드 등을 비롯해 수십여개 대학이 이미 3D프린팅 기술 연구에 돌입했다. 특히 MIT는 팝팹(PopFab)이라는 손으로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에 들어갈 작은 3D프린터까지 개발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내놓기도 했다.
네바다주립대는 미국 최초로 지난해 3D프린터로 실험하는 3층짜리 실험실과 제품 전시실을 만들어 공과생은 물론 모든 학생과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했고, 버지니아공대는 초·중·고 학생을 3D프린터로 공부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3D 프린팅 관련 교육의 표준화를 이끌고 있다.
◇MIT가 개발한 초소형 3D 프린터 팝팹(PopFab).(사진=VIMEO 영상 캡쳐)
◇EU, ‘저성장, 고실업 타개' 핵심전략 부상
유럽연합(EU)은 저성장 기조와 실업률 문제를 해결할 최대의 기회로 3D 프린터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EU는 첨단기술 육성을 통해 2020년까지 GDP 내 제조업 비중을 20%까지 늘리는 프로젝트에 3D 프린팅을 중점과제로 내세웠다.
학계, 기업계, 개인 디자이너를 막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유럽은 특히 네덜란드의 선전이 눈에 띤다. 3D 프린터 기업의 '표본'으로 평가받는 '셰입웨이즈'(Shapeways)는 생산, 유통, 소비뿐만 아니라 유저들간 제품 거래까지 포괄하며 일종의 '소비 커뮤니티'를 형성, 유럽 전역으로 세력권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보경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네덜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 3D 프린터와 관련한 리딩 컴퍼니,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이유는 3D 기술 노하우가 업계 내에 오랜 기간 축적되어 왔고 이 같은 시장 기반이 정부의 드라이브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된 점이 크다"고 평가했다.
연구기관과 기업 간 협력사례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미 5년 전부터 3D 프린팅 기술을 연구해온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원(TNO)은 최근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의 기업들과 공동개발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 이외에도 TNO는 소재를 다양화하고 프린팅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국제 생명공학 전시회를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3D 프린터로 만든 인공혈관을 공개해 학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3D 프린터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복사하는 실험에도 성공하며, 선도적인 3D 프린팅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복제된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간이나 심장, 피부 같은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어 생명공학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日 시장 활성화 급진전, 中 강력한 정부 '드라이브'에 탄력
우리나라의 라이벌인 일본은 최근 아베 신조 총리가 한국 기업과 글로벌 경쟁에 뒤처진 자국 제조산업 육성에 1조엔(12조 2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직접 기업 및 대학과 손잡고 차세대 3D프린터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스기우라, 파소텍 등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일본 시장은 캐릭터, 피규어 등에 대한 3D 프린팅 수요를 적극 활용해 시장 활성화를 촉진하고 있다. 현재 일본 내에는 중저가형부터 초저가형까지 다양한 제품이 보급되고 있다. 한계로 지적되던 가격문제를 해결, 대중화가 앞당겨지면서 일본은 소비자들이 3D 프린터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국가로 떠올랐다.
◇일본 시부야에 위치한 3D 프린터 카페 'FabCafe' (사진=dyvikdesign)
실제 최근 니케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47.2%가 3D 프린터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급 기간이 미국, 유럽에 비해 짧았다는 점을 비춰볼 때 상대적으로 높은 속도로 3D 프린터 영향이 확산 중인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육성 정책 아래 3D 프린터 산업의 성장세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3D 프린터 기술의 산업화와 시장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베이징에 '3D 프린터 기술산업연맹'을 세웠다.
3D 프린터로는 세계 최초로 세워진 이 연맹에는 중국의 주요 3D 프린터 관련 교육기관과 협회, 기업 등 각 계가 참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기술산업연맹이 산관학 협력을 가속화하고 산업표준을 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3D 프린터 시장규모를 지난해 기준 약 10억위안(한화 약 1827억원)으로 추정했다. 정부 당국은 오는 2015년 말까지 중국의 3D 프린터 시장이 매년 2배씩 성장해 시장규모가 100억위안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노동집약에서 첨단기술로 전환하는 계기를 3D 프린터가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
중국은 자국 시장 내 현재 100여개의 3D 프린터 설비 제조사와 판매업체가 있고, 칭화대학과 시안교대, 화중과기대, 베이징항공대, 시베이공대 등 대학을 위주로 3D 기술 연구기관 등이 조직돼 있다. 이들이 서로 협력체계를 구축, 기술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1차적 목표다.
스트라타시스의 조나단 자글럼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사장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거액을 투자해 상하이에 법인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세계 73개국에서 3D 프린터가 판매되고 있지만 중국은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라고 평가했다.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비영리 기술연구기관인 Tech Yizu.(사진=TechYi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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