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곧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2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와 관련해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비슷한 시간에 검찰은 '환수'가 조만간 '수사'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씨의 미납 추징금 환수작업이 본격화 되면서 검찰은 유례 없는 국민적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달 16일 전씨의 연희동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관심은 폭발했다.
시공사 등 전씨 일가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수백여점의 그림을 검찰이 압수해오면서 그림의 시가가 수백억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고, 전씨의 처남 이창석씨가 비자금 저수지로 관리해 온 여러 부동산이 발견되면서 전씨의 전체 재산이 억대 단위를 넘어선 천문학적인 규모라는 추정도 나왔다.
그러나 7월 하순으로 들어서면서 환수팀의 활동은 이전만큼 역동적이지 못했다. 압수해 온 그림들도 고가의 진품이 아닌 위품으로 가치가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의혹을 받고 있는 부동산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검찰이 벽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수사로 전환할 수 있다는 초기의 입장도 흐지부지 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검찰의 고민 '기도비닉'
그러나 검찰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수사상 기도비닉(企圖秘匿)의 문제다. 기도비닉은 군사용어로서 '조용히 들키지 않고 움직인다'는 뜻이다.
수사팀 관계자들을 비롯해 검찰 간부들은 전씨 미납 추징금 환수상황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환수의 핵심인 자금 원천의 규명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씨에 대한 추징명령이 확정된 것은 16년 전으로, 그간 전씨 비자금을 뿌리로 한 재산이 언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채동욱 검찰총장도 "매우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차남 재용씨가 1997년 결혼할 당시 받은 축의금 13억원은 뇌물의 성격이 강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만큼 이에 대한 검토가 무의미하게 됐다.
2004년 삼남 재만씨가 결혼할 때 들어왔다는 축의금 160억원도 엄밀히 따지면 소유주체가 전씨로, 이 돈이 재만씨 등 친인척에게 흘러들어갔다면 증여로 봐야 하고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면 조세포탈에 해당하지만 역시 시효가 지났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연희동 자택을 압수수색하자마자 전씨는 변호사들을 불렀다. 초기부터 법적 대응에 들어간 것이다.
◇전두환, 검찰 움직이면 즉각 법적 대응
검찰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검찰의 움직임이 드러나면 곧바로 전씨는 곧바로 그에 맞는 법적 맞대응을 하고 있다. 최근에 검찰이 압류한 부인 이순자씨의 30억짜리 연금보험도 검찰이 압류한 지 2일 뒤 변호사가 압류해제를 신청했다. 현재 이 건은 검찰에서 심리 중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환수작업을)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의 기대가 하늘을 찌른다"며 부담감을 내비쳤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들도 "기다려 달라", "구체적인 상황은 말할 수 없다", "우리도 성과를 내야 한다", "소리가 요란하면 나중에 (국민에게)보여드릴 게 없다", "시간이 더 지나봐야 한다"는 등 극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지나친 관심과 기대 때문에 위축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더욱이 'NLL 문건'과 관련된 극한 대립의 정치권 이슈를 고스란히 검찰이 떠 안게 되면서 이런 분석은 더욱 늘어났다.
그러나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지난 30일 주례간부회의에서 군사전략을 예로 들며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채 총장은 "종심을 향해 빠르고 강하게 화력을 집중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사학의 기본원리"라며 "모든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일을 벌여놓고 어렵게 끌고 가기 보다는 필요불가결한 사건을 선별한 뒤 총력을 다해 제대로 된 결론을 이끌어 내라"고 강조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종심 향해 화력 집중"
채 총장이 직접 전씨의 미납추징금 환수를 지시하고 힘을 실어줘 온 배경과 국민적 관심 등을 감안해 볼 때 채 총장의 이같은 언급은 전씨 일가 추징금 환수팀에게 직접 던진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후 수사팀을 비롯한 검찰 내부에서도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최근에 만난 한 검찰 관계자는 "(환수팀이)가능성이 높은 것에 집중하고 있다. 성과를 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종전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크게 네갈래로 나눠 전씨의 재산을 추적하고 있다. 그림과 부동산, 각종유가증권, 해외자금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우선 국내에 있는 자산의 출처 규명에 주력 중이다.
이러던 차에 수사팀과 밀접한 검찰 관계자가 '환수'의 '수사'전환 시기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 주목된다.
수사의 전환은 전씨를 직접 겨냥하기 보다는 재국씨 등 전씨의 세 아들과 처남이자 부인 이순자씨의 막내동생인 이창석씨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씨의 비자금을 오랜 기간 관리하면서 회사를 만들고, 부동산을 매입매각하는 과정에서 전씨 아들 등의 각종 횡령과 배임, 해외재산 도피 등 각종 범행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수백개의 유가증권 거래 과정에서도 조세포탈 혐의가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마지막 목표로 두고 있는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 조성과 자금 운용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혐의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들 및 처남 등 측근 범죄혐의 구체화 된 듯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범행을 검찰은 지나칠 수 없다. 수사해서 혐의가 드러나면 기소해야 함이 원칙이다. 때문에 수사로 전환된다는 의미는 전씨의 아들들과 이씨 등의 사법처리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검찰이 목적한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되면 전씨 입장으로서는 심리적, 경제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추징금의 자진납부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채 총장은 최근 기자단과의 만남에서 전씨의 미납추징금 환수와 관련해 "그분(전두환)도 검찰도, 국민들께서도 빨리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어 검찰에서도 전씨의 자진납부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범행이 드러난 전씨 일가의 사법처리는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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