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중앙 정부부처의 A국장은 요즘 사무실에 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더위로 사무실은 찜통이 됐지만 절전을 위해 냉방장치를 가동 못해서다. 창문을 열고 부채질도 하지만 아스팔트 열기가 실내까지 전해진다. 전기 아낀다며 사무실 불까지 끄면 동굴이 따로 없다. 하지만 불평도 못한다. 정부가 전력난 극복을 위해 절전을 강조하는데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연일 30도가 넘는 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쥐어짜기 절전만 강조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 아끼려다 쪄 죽겠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지난 2일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장마가 끝나는 8월 둘째주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며 전국적인 절전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날 정부는 계약전력 5000㎾ 이상 업체는 8월 한달동안 하루 4시간 의무적으로 전력을 최대 15% 감축할 것을 비롯 실내 냉방온도 26℃ 이상 유지, 문 열고 냉방영업 금지, 공공기관 절전 등을 통해 전력낭비를 최대한까지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절전 대책에 국민 대부분은 '절전'이 아니라 '고문'에 가깝다며 반발했다.
5일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만난 유모씨(45세)는 "요즘 제일 행복한 때가 에어컨 틀어 주는 지하철 타고 출퇴근할 때"라며 "정부의 절전 덕분에 회사에 있으면 너무 더워서 이러다 쪄 죽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과연 상식적 수준이냐"고 푸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한낮 온도는 대구 34도, 대전 31도를 기록했고, 서울은 오후 잠시 비가 내렸음에도 31도까지 올라가는 등 8월 내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전망이다.
◇5일 서울 한낮 온도가 31도를 기록했다.(자료제공=뉴스토마토)
공무원 김모씨(53세)도 무더위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는 "혼자면 더워도 참겠는데 사무실에 있으면 여기저기서 더위에 헉헉거리는 게 보인다"며 "사람들이 지쳐있는 걸 보면 나도 따라 기운이 빠지고 현기증까지 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가게나 마트의 문 열고 냉방영업을 전력낭비의 주범으로 꼽고 단속을 강화한 후 상인들의 불만도 거세다.
과천에서 요식업을 하는 권모씨(40세)는 "경기도 안좋은데 문닫고 있으니 누가 쳐다 보겠냐"며 "무더위가 아니라 밑도 끝도 없이 아끼라는 절전대책 때문에 더 열 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월 둘째주부터 장마가 그치면서 5일 현재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강릉 등 전국 주요 도시의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섰다.(사진제공=뉴스토마토)
에너지 전문가들도 정부의 절전 대책에 우려를 보였다. 절전을 통해 전력대란을 막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국민 생활에 무리를 주지 않는 탄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너지시민연대 관계자는 "정부의 고강도 절전대책은 원전 사태 중단 등의 책임과 고통을 국민에 떠넘기는 꼴"이라며 "아무리 절전 취지에 공감해도 국민생활에 무리를 줄 정도라면 실효성을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공무원이나 마트 직원 등 감정노동자는 업무 특성상 그날 컨디션이 중요한데 무리한 절전은 불쾌지수만 높여 업무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탄력적인 절전 대책으로 괜한 비효율과 짜증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산업부 관계자는 "8월 둘째주 전력 예비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전망인 만큼 이번이 고비"라며 "현실적으로 당장 전력공급을 늘리기는 어렵고 결국 전력수요를 줄이는 게 가능한 대안이기 때문에 국민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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