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2007년 남북한 정상회의록 폐기 사건' 수사에 대한 논란이 참여정부 관련인사들이 본격 소환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다음 주부터 국정감사가 예정되어 있어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시 회의록 폐기 사건 수사 논란은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검찰의 수사 초점은 회의록이 청와대이지원에서 빠지게 된 경위와 봉하이지원에 탑재됐던 초안(복구본)이 삭제된 이유, 삭제를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 등에 맞춰져 있다.
검찰은 지난 5일 소환조사를 받은 조명균 전 참여정부 안보정책비서관과 7일 소환한 임상경 전 기록관리비서관을 상대로 이같은 내용을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소환을 모두 비공개로 하고 있으며 조사내용 역시 비밀에 부치고 있다. 정쟁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국가기록원(사진=뉴스토마토DB)
그렇다면 과연 회의록이 청와대이지원에서 누락된 이유는 무엇일까? 또 봉하이지원에서 초안이 삭제된 이유와 이를 지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동안의 검찰조사와 참여정부인사들의 발언, 언론을 통해 드러난 사실 등을 종합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참여정부 인사들에 따르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의 녹취파일을 전문 장비를 갖춘 국가정보원에게 줘 녹취록 형태의 회의록 초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녹취록은 책자형태로 만들어졌고, 국정원은 이 책자를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청와대이지원에도 동일한 내용이 등록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책자를 검토한 뒤 오탈자나 외교적인 관례에 따른 문구 수정 등 일부 수정을 지시했고, 완성된 회의록 수정본을 국정원에 보관시켰다. 이 과정에서 최초 책자 형태로 생성됐던 녹취록은 수정본이 완성되면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 전 대통령은 이 회의록 수정본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려 했으나 후임 대통령들이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도록 국정원 공공기록물로 보관시켰다고 참여정부 인사들은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면 15년간 열람이 제한돼 후임 대통령이 열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8월16일 오전 국가기록원을 압수수색했다. 검사들을 비롯한 수사요원들이 국가기록원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전재욱 기자)
◇최초 초안·수정본 청와대이지원에 탑재
수정본 역시 당초 청와대이지원에는 탑재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청와대이지원을 복제한 봉하이지원에서 수정전 초안과 수정본이 같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초안은 봉하이지원에서 삭제된 것으로 검찰이 확인한 후 복구됐다. 검찰이 초안 대신 복구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정본에 앞선 것이라 내용도 더 직접적이고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초안이 원본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수정본 역시 최종본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에 검찰은 발견본이라고 부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봉하이지원에서 발견된 초안과 수정본이 청와대이지원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청와대이지원이 국가기록원으로 이전되기 직전 삭제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국가기록원과 검찰에 따르면 청와대이지원을 기록원으로 이관하기 위해서는 셧다운(시스템을 닫는 것)을 해야 하는데 셧다운 이후 청와대이지원에 대한 별도 작업흔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볼 때 봉하이지원의 복제시기는 청와대이지원에서 초안과 복제본이 삭제되기 이전인 것으로 보인다. 즉 회의록 초안과 수정본의 청와대이지원 탑재, 봉하이지원 생성, 청와대이지원에서 회의록 초안 및 수정본 삭제, 셧다운, 국가기록원으로 청와대이지원 이관 순으로 절차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문제는 청와대이지원을 국가기록원으로 이전하기 전에 그 안에 있던 회의록 초안과 수정본이 왜 삭제되었는가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 이미 수정본을 공공기록물로 보관시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지난 6월 국가정보원에서 공개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사진=뉴스토마토DB)
◇국정원에 수정본 보관..별도 '지정' 필요없어 삭제한 듯
동일한 문건을 공공기록물로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면 동일한 문서의 법적 위치가 충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으로 회의록을 따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이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재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 부위원장은 "현재 검찰은 남북정상 회의록인 만큼 당연히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지정은 대통령 재량으로 되어 있다"며 "지정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이지원에서 초안과 수정본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는지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이는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 지정이라는 행정행위를 했다가 철회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초안을 삭제한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검토하고 있다는 검찰측 입장에 대해서도 "초안과 수정본 작성은 최종본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며 "형식적으로 완성이 됐다는 측면만을 보고 이를 각각 하나의 문서로 간주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사진=뉴스토마토DB)
◇검찰 논리대로라면 "피의자신문조서 초안도 파기 안돼"
이 변호사는 이어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검사들이 피의자를 신문한 뒤 신문조서를 작성할 때 오류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고 최종본만 보관한 뒤 초안은 폐기하는 것도 공문서무효죄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남는 문제는 '누가 삭제했는가, 또는 누가 삭제를 지시했는가'이다.
조 전 비서관은 올해 초 노 전 대통령이 삭제를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노 전 대통령은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초 조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삭제지시' 취지의 진술을 한 것을 두고도 당시 조사의 초점이 '삭제 지시'에 있지 않고 'NLL 폐기발언' 의혹 규명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정확한 진술이 나왔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시행 이후 첫 이관작업이었다는 면에서도 이관 과정에서 여러 법적 공백이 불가피했을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4월27일 제정돼 같은 해 7월28일 첫 시행됐다.
이런 과정에서 국정원에 회의록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던 고위 청와대 관계자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을 잘못 이해한 인사가 임의로 직접 또는 다른 사람에게 지시해 폐기했을 가능성도 높다.
◇정상적 절차 없이 임의 삭제됐다면 법적책임 불가피
그러나 과정이야 어떻든 회의록이 대통령기록물 대상인 만큼 정상적인 절차 없이 임의로 삭제됐다면, 그 관련자들은 법적인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휴일인 9일도 참여정부 인사들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김정호 전 기록관리비서관과 이창우 전 1부속실 행정관, 김경수 노무현재단 사업본부장도 소환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참여정부 김 본부장과 이들을 변호하고 있는 박성수 변호사 등 3명이 내일(9일) 오후 2시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번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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