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찬성하는 의원이 있다면 그 지역구에 원전을 지어주라"고 받아치며 "원전의 안전성과 필요성에 대한 장관의 소신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전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고 정부는 적절한 원전 비중을 유지할 계획"이라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날 국감은 원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실시한 에너지원별 발전방식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원자력에 대한 찬·반이 팽팽히 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를 수행한 이근대 에경원 선임연구위원은 "설문결과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에도 원전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많다"며 "그러나 2009년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후쿠시마 사고 후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반적으로 강해졌고 특히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전쟁 대비하는 정부..경제성과 환경성 고려 원전이 적합
그렇다면 국민의 절반이 반대하는데도 정부가 원전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상직 장관이 국감에서 밝혔듯 '에너지안보'로 대표되는 자주개발률 때문이다. 장차 석유·석탄 등 지하자원이 고갈되거나 환경오염 문제가 커지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대체에너지를 구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말 그대로 에너지 전쟁 시대.
이때 각국은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에너지원과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데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분야.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는 비싸고 상용화가 어려워 결국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카드는 원전이 유일한 셈이다. 마침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 등에 원전을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도 갖췄다.
이에 송유종 산업부 에너지자원정책관은 "산이 많고 유수량이 적은 국내 여건에서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한계가 있다"며 "경제성과 환경성을 고려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리와 각종 사고 등으로 원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낮아졌지만 자주개발률과 경제성, 온실가스 효과 등에서 원전만한 게 없다는 것.
◇에너지원별 발전 단가(2012년 기준. 자료=한국수력원자력)
◇에너지원별 발전 단가(2011년 기준. 자료=미국지열에너지협회(Geothermal Energy Association))
정부는 매년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대처한다는 측면에서 가격대비 발전량을 따졌을 때도 원전이 가장 경쟁력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에너지원별 발전단가는 석탄이 1㎾h당 66원인데 반해 원자력은 39원으로 집계됐다. 앞서 에경원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던 태양광은 1㎾h당 599원이나 됐다.
발전소별 부지면적도 원전이 풍력과 태양광 발전소보다 효율적이다. 한수원 자료를 보면 100만㎾ 전력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전 부지면적은 33만㎡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10분의 1수준. 그러나 태양광 발전소는 여의도의 10배에 해당하는 3300만㎡가 필요했고, 풍력 발전소는 여의도 면적의 50배에 달하는 1억6500만㎡를 써야 했다.
◇100만㎾ 전력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별 발전 부지면적(자료=한국수력원자력)
◇명분에 맞는 사회적 합의 필요
사실 에경원 조사에서도 드러났듯 우리 국민들은 아직 원자력만큼 효율적인 에너지원이 없다는 점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과 관련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가 속출하면서 원자력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많이 낮아진 게 현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원전 정책의 첫 단추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
에너지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를 으뜸으로 꼽았다. 원전 필요성을 진정성 있게 알리고 각계 의견을 수렴한 가운데 밀어 붙이기식보다 안정성을 고려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 이근대 에경원 연구위원은 "원전 필요성을 적극 홍보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며 "국민 지지와 여론에 기초한 일관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관계자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최근의 원전 비리 등으로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재도출해야 할 때"라며 "밀양 송전탑 설치에 따른 갈등은 물론 20년 넘도록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례에서 보듯 원자력에 대한 국민 공감대 없이는 갈등만 커지고 사회적 비용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에너지 공기업의 원전 비리 등으로 반핵 여론이 증가하면서 원자력 반대하고 새로운 에너지 대안을 찾기 위한 토론회도 급격히 늘고 있다.(사진=민주당, 정의당)
원전 이해관계자끼리 모여 밀실로 진행되는 원전 정책 구조에서 벗어나 정보를 개방하고 국민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원자력 관련 정보가 많이 공개되야 원전에 대한 오해를 풀린다는 것.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관계자는 "가칭 원자력소통협의회 등을 설치하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민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원전 반대 여론과 논리에 성의 있게 대응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 관계자는 "원전 반대는 님비현상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며 돈을 풀어 해결하려는 정부의 낡은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며 "다원화, 민주화, 지방화 추세로 원전 반대 논리도 다양해진 만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설득과 대응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전이 정말 대안이라면 폐로(廢爐)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원전 건설만큼 수명을 다한 원전을 폐쇄(폐로)하는 문제도 고민할 시기가 왔다. 에너지정의행동 관계자는 "원전은 방사성 폐기물을 이용해 발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생긴다"며 "그러나 정부는 지금껏 발전에만 급급해 원전 증설에만 관심을 뒀을 뿐 폐로나 사용후핵연료 처리에는 무관심했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2030년 이전에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자력발전소(자료=한국수력원자력)
실제로 일본은 최근 후쿠시마 4호기의 폐로를 결정했지만 우리나라는 거꾸로 전력수급을 해결한다며 별다른 폐로 대책 없이 수명이 다한 고리 원전1호기를 연장가동 하고 있다. 특히 사용후핵연료에 관해서는 1990년과 2003년에 충남 태안군 안면도와 전북 부안군을 방폐장 부지 확보하려고 했다가 무산된 후 20년째 뚜렷한 진척이 없다.
그러나 폐로 비용을 고려하면 이 문제를 마냥 방치할 수 없다는 우려가 크다. 산업부와 한수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원전 1기의 폐로 비용은 6000억원 수준이며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은 총 12기. 지난해 기준으로 계산해도 총 7조2000억원나 들지만 물가상승률과 각종 부대비용을 고려하면 실제 비용은 이보다 더 오를 전망이다.
핵폐기물은 더 골치 아프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능이 사라지기까지 수만년 이상이 걸리는 데다 냉각시스템 마비나 대규모 지진 등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방사선이 대량으로 누출될 위험이 크다. 한수원 자료를 보면 올해 기준 국내 총 폐연료봉은 1700여만개로 오는 2016년이면 각 원전에서 보관 중인 핵폐기물 저장용량이 한계에 이른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프로세스(사진=산업통상자원부)
이에 대해 에너지정의행동 관계자는 "노후 원전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현재 폐로에 대한 연구는 재원 마련, 기술과 법 제도 개선, 지역 주민과의 소통 등 모든 측면에서 부실하다"며 "원전 사후처리 비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재산정을 통해 원자력의 경제성을 함께 재검토해야 할 단계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원자력을 주력에너지로 선택했다면 반드시 출구전략을 확보한 뒤 원전 정책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원전은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정부는 원전을 폐기하고 신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한 독일과 원전 무턱대고 늘렸다가 후쿠시마 사고로 발목이 잡힌 일본 사례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