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국내 주식시장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하지만 연말을 앞둔 지금, '장미빛 기대'는 그저 '기대'로 끝나는 분위기다.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와 글로벌 주식시장으로의 도약이라는 과제는 각종 규제와 시장에서 불거진 악재에 발목이 잡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투자업계는 "과감한 규제개혁만이 한국 자본시장의 100년 대계를 이끌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투업계 투자자 불신 '심각'..신뢰도 회복 절실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국내 금융투자업계가 신뢰도 추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동양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와 동양증권의 '불완전판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증권업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News1
업계에서는 독립금융상품 판매채널과 자산관리 전문인력을 신설해 불완전판매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독립금융상품 판매채널은 상품 제조자로부터 수수료나 보수를 취하지 않고 소비자로부터 자문보수·판매수수료를 수취함으로써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특히, 해당 판매채널에 실명확인과 계약체결 권한을 가진 자산관리 전문인력을 배치해 이해 상충 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러한 새로운 채널 신설을 통해 판매자와 소비자 이익의 이해 상충적 요소를 차단해 금융소비자 보호는 물론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증권사 무료 수수료 등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와 그에 합당한 수수료 수취로 서비스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업계는 출혈경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며 "서로가 공멸할 수 있는 무료수수료와 같은 과당 경쟁은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산업 중심, 은행서 금융투자업계로 이동시켜야"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은행 중심의 국내 금융산업을 금융투자업계로 옮기는 데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막대한 자금을 등에 업은 외국자본과 경쟁하기에는 은행 중심의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44개 대상국 가운데 19위를 차지했지만, 금융시장 성숙도는 71위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지목됐다.
금융시장의 이런 성숙도 평가결과는 'GDP 기준 세계 14위의 경제규모', '세계 7위 수출규모'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특히,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산업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자료=금융투자협회)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호주는 GDP대비 금융산업의 비중이 9.7%로 호주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이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GDP 기여도는 2011년 기준 7% 수준에 불과하다"며 "우리나라도 금융투자산업 인프라 개선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제고하고,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도 "국민들에게서 받는 대출 이자와 ATM 수수료가 주된 수익인 은행 을 중심으로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금융투자업계가 향후 쓰나미로 몰려올 외국자본과 겨뤄서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내실있게 몸집을 키워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투자업계가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제대로 구실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가조작이나 불공정거래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과 함께 정보공시 제도의 투명성,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금융교육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소문을 믿고 투자에 나섰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며 "소문에 의한 주식 거래를 줄이기 위해 정보 공시 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특히, 주식시장 개선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주가조작이나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등 위법을 행한 사람에게는 엄한 처벌을 내려 행위 근절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도 "금융당국은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만들고, 투자자 교육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규제로 수익창출 한계..자본시장 체질개선 시급"
은행권이 증권사 업무 영역을 탐내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투자업계는 과도한 규제로 신규 수익원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증권사 등 금융투자회사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영업용순자본비율(NCR)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금융투자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회사에 대해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 이상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NCR이 100% 이상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 비율이 150% 밑으로만 떨어져도 ‘경영개선 권고’를 내리고 있다. 증권사들이 이른바 '노는 돈'을 그만큼 많이 통장에 쌓아놓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은행의 경우에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최소요건 8%를 적용받는다. 같은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금융투자업계에 대한 규제 강도가 은행보다 1.5배 정도 높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 등 금융투자회사의 수익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NCR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며 "현재 NCR이 공식적으로는 150%이지만, 실질적으로는 400%를 넘도록 하고 있어 증권사의 자본유휴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도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레버리지가 낮은 편인데도 아직 NCR 규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라며 "조금 더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와 함께 은행이나 보험권과 달리 세제 혜택에서 배제되는 점도 개선돼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사진=뉴스토마토DB)
실제 은행권의 재형저축과 보험사의 장기저축성보험, 즉시연금 등엔 비과세 혜택이 있지만, 금융투자업계의 장기펀드에 대한 소득 공제는 논의자체가 안돼 왔다.
이 때문에 장기펀드와 학자금펀드 등 장기 투자상품에 세제혜택을 부여해 자본시장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저금리·저성장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자산 형성을 지원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장기세제혜택펀드를 도입하면, 서민과 중산층의 재산형성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정부의 복지재정 부담을 줄이고, 자본시장의 체질강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