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재계가 환율로 끙끙 앓고 있다. 환율이 요동치면서 수출은 둔화되고, 이는 곧 기업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출발점인 셈이다.
특히 환율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자동차 제조사들은 벌써 신경이 곤두서 있다.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들의 공세에다, 장사를 잘 해놓고도 환율 때문에 이익이 낮아질 수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가다. 당분간 엔화 약세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업들의 환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환율 끝없는 추락..기업들 환손실 확대
최근 원·달러 환율은 연저점인 1050원대까지 하락했다. 지난 6월 미국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1160원을 넘었던 것과 현격히 비교된다.
특히 엔화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원·엔 환율은 1037원대로, 5년 2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한 달 간만 무려 4.76%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이 0.13% 하락한 것에 비해 하락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환율의 이 같은 움직임에 기업들이 이미 비상이 걸렸다. 특히 국내 수출 주력품목인 전자와 자동차, 반도체 등은 환율과 더 밀접해 실시간 모니터링 체제로 전환했다. 원·엔 환율 하락으로 경쟁국인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이미 수출 전선은 타격을 입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엔저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긴급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차군단의 한 축인 현대차의 위기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국내 기업들은 올 한 해 환율 하락으로 이미 상당 규모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올 1∼3분기 누적 연결 기준 순환차손 금액은 총 76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9570억원 환차익을 거둔 것과 비교해 1조717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중견·중소기업들은 이 같은 환율 공습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키코 사태로 환변동 보험에 부정적이었던 중견·중소기업의 보험 가입이 최근 폭증 추세다. 그만큼 불안감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중소·중견기업의 `13년도 통화별 환변동보험 이용 현황(단위:%) (자료=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에 이달까지 중소·중견기업의 환변동보험 이용금액은 1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3% 증가했다. 지급 보험금 역시 지난해에 비해 87.7% 늘었다.
오주현 무역보험공사 환위험관리반장은 "환율이 예상과 달리 급락하는 경우에는 수출한 기업이 위태로운 상황에 빠질 수 있으므로 환위험 관리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라며 "기업의 연간 사업계획에서 정한 손익분기점 환율 이상에서는 기계적으로 일정부문 헤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환율 변동에도 경제지표는 '굿'
원화강세·엔화약세가 국내 수출에 부정적인 요인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6월 이후 원·달러 환율이 하락했음에도 수출 회복이 뚜렷해졌다는 게 주된 논거다.
10월 경상수지 흑자가 5개월 만에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경상수지 흑자는 95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21개월째 흑자 행진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9.8% 급증했다.
선진국의 경기 회복세와 원자재값 안정 덕이다. 주력 수출 상품인 휴대전화·자동차·반도체 등은 환율 공습에도 여전히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김효진 SK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환율 여건은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그럼에도 지난 1년간 한국 수출은 일본 대비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음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두언 하나대투증권 연구원도 "원고-엔저의 고착화로 수출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만 예년에 비해 국내 경제의 환율 변동에 대한 민감도가 줄었다"며 "국내 수출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바탕으로 일본 대비 한국의 수출 강도는 지속적인 상승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과 일본의 대미·대중 수출 통계를 비교해보면 일본보다 한국이 선방하고 있다. 일본의 대미 수출은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주춤해졌다. 대중국 수출 역시 지난해 연말을 기점으로 한국에게 선두를 내줬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그룹 회장)의 발언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박 회장은 수출 증대를 위한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25일 CEO 포럼에 참석해 "국내에서 제품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던 시대와 상황이 달라졌다"며 "원화 가치가 낮아져 수출이 증가하면 그 이득은 소수에 집중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달러 대비 원화 환율뿐 아니라 유로화·위안화 환율 등을 고루 살펴서 국가 전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 사상 첫 일본 추월ⓒNews1
아베노믹스 지속으로 엔화 약세 압력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투자은행(IB)은 내년 환율이 110엔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IB 9곳의 달러·엔 환율 12개월 전망치 평균은 110.89엔이다. 현재 환율 102엔을 기준으로 1년 뒤 8%가량 평가 절하되는 셈이다.
채현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 압력이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다만 과도하게 축적돼 있는 엔화에 대한 숏포지션 비중과 연중 고점(103엔대)에 대한 부담 등을 감안하면 상승세는 현 레벨 수준에서 조정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재계 관계자는 "환율은 기업 환경에 있어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변수이기 때문에 사실상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지금으로서는 대내외 경제상황을 수시로 모니터링해서 유연하게 경영계획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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