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일본 경제가 예상보다 부진한 회복세를 나타냈다.
아베 신조 총리의 경기 부양책인 '아베노믹스'가 올해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긴 했지만 기업들의 투자가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 4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수요가 일시적으로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4분기 성장 전망은 크게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시행하는 5조5000억엔 규모의 경제대책도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제 충격을 상쇄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日 3분기 GDP, 잠정치서 하향..경기 회복세 '주춤'
9일 일본 내각부는 3분기 국내총생산(GDP) 확정치가 전분기 대비 0.3%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발표된 예비치 0.5% 증가를 하회하는 것으로 사전 전망치 0.4% 증가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연율로 환산한 GDP는 1.1% 성장하는데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역시 잠정치 1.9% 성장에서 크게 낮아진 수준으로 예상치 1.6% 성장도 하회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민간 수요가 전기 대비 0.5% 늘어 잠정치 0.7% 증가에서 하향됐다. 이중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잠정치 0.2% 성장에서 0.0% 보합으로 낮아졌다. 다만 가계 소비는 0.2% 증가해 잠정치 0.1%보다 높아졌다.
이 밖에 공공 수요 역시 전 분기에 비해 1.4% 늘어 잠정치 1.6% 증가에서 하향 수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적인 물가 움직임을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것)는 전년 동기대비 0.3% 하락해 잠정치와 동일한 수준을 이어갔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GDP 하향은 일본 경기 회복세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날 GDP와 함께 발표된 일본 경상수지도 크게 악화된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10월 경상수지는 1279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무려 9개월만에 적자전환한 것으로 예상치 1530억엔 흑자에도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일본 GDP(전기比) 추이>
(자료=Investing.com)
◇아베노믹스 제동 걸렸나?.."기업들 투자 안해"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 경기 회복세에 걸림돌이 됐다고 분석했다. '아베노믹스'가 기업들의 투자 확대로까지 이어지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설비투자 하락이 GDP 하락의 주요 요인"이라며 "4개 분기동안 플러스 성장은 지속했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권을 잡은 이후의 높은 성장세는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는 올해만 17% 넘게 하락하면서 일본 수출 기업들에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엔화 약세가 수출 외 다른 산업엔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출에 의존하는 자동차 업계는 엔저로 환차익을 봤다"며 "하지만 식품업체나 상사들은 수입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토노우치 슈지 미츠비시UFJ모간스탠리 증권 스트래지스트도 "서비스 부문의 자본지출은 모멘텀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일본 디플레이션 탈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업들의 투자는 제대로 된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주 일본 재무성이 집계한 3분기 기업들의 자본지출도 전년 동기 대비 1.5%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는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3.1% 증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3분기 자본지출은 전분기 대비로는 0.5% 감소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 이 중 제조업 부문에 대한 투자는 3조1100억엔으로 1년 전에 비해 6.7%나 감소했다.
게다가 비금융 기업의 자본 대비 자산비율(Capital-to-asset ratio)은 역대 최고 수준인39%를 나타냈다. 기업들이 투자 대신 현금 쌓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WSJ은 "일본 기업들이 돈방석을 깔고 지출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키노 준이치 SMBC닛코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기업들은 향후 경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장 둔화는 일시적"..전망 여전히 '낙관적'
다만 향후 일본 경제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5%에서 8%로의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소비자들이 앞다퉈 지갑을 열고 지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자카키 코헤이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성장 둔화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며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소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 경제는 내년 3월말까지 모멘텀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다수의 전문가들이 예상한 일본 4분기 GDP는 연율 3.6%이다. 이는 3분기 결과와 비교하면 두드러진 성장세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내년 1분기 GDP는 이보다 더 높은 4.8%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선 소비세 인상 이후의 경제 성장세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분석했다. 성장세를 뒷받침할만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소비세 인상에 대비해 5조5000억엔 규모의 경제대책을 시행한다. 지방 자치 단체와 민간 부담 등까지 모두 포함할 경우 경제대책 규모는 18조6000억엔에 이를 전망이다.
내각부 관계자는 "경기부양책으로 GDP가 1%포인트 가량 오를 것"이라며 "이와 함께 25만개의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정부의 임금 인상 노력도 소비 촉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해선 임금이 올라야 한다"며 "도요타 히타치제작소 등 기업들은 이미 임금 인상을 약속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지난달 "실적 개선을 직원들의 임금 인상으로 보상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엔저 흐름에 따른 수출 기업들의 실적 개선도 여전히 간과할 수 없다.
지난주 미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지난 5월23일 이후 처음으로 103엔대를 넘어섰고(엔화가치 하락), 이날 역시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마커스 쇼머 파인브리지인베스트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GDP 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돌았음에도 엔화 가치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며 "엔저 기조는 내년 성장 전망을 밝게할 것이기 때문에 이날 GDP 결과에 대해서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