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김민성기자]
KT(030200) 자회사 직원이 금융사로부터 3000억원대의 부당대출을 받아 챙긴 사고에 대해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부당대출'이 아니라 '대출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기업 자회사 직원의 범죄란 점을 부각시켜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부당대출의 당사자가 아니며, 대출시스템의 문제 때문도 아니란 것에 세간의 관심의 돌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국과 금융사가 파악하는 피해금액이 당초 적발시보다 급격히 늘어나면서 그간의 대출심사과정 등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은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다 대기업 이름만 믿고 대출서류 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뉴스토마토.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불어나는 대출사기 금액..3000억원 넘을 듯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T 자회사이자 시스템 통합 업체인 KT ENS의 김 모 부장이 협력업체와 공모해 13개 금융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가로챈 금액은 3000억원을 웃돌고 있다.
전날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긴급 설명회를 갖고 시중은행 3곳과 저축은행 10곳의 피해규모가 총 2800억원(각각 2000억원, 800억원) 규모라고 발표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3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대출사기 금액의 규모는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출금 돌려막기를 위해 계속 대출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어 피해 금융사와 액수 집계가 어렵다"며 "조사가 확대됨에 따라 피해금액이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KT ENS의 김 부장과 협력업체 등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때 KT ENS의 매출채권이 있으면 이를 담보로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부장은 협력업체들이 KT ENS에 휴대전화 등을 납품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매출채권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사기를 당한 금융회사 중 금액이 가장 많은 곳은 하나은행으로 1624억원을 대출해줬다. 이어 농협은행과 국민은행이 각각 296억원을, 10개 저축은행이 총 800억원을 대출해줬다.
은행 등 금융사들은 사고 적발 초기부터 피해금액 산정조차 제대로 안되는 모습을 보였있다. 대출 피해금액이 수천억원에 달하는데도 적발 당시 해당 은행의 리스크 담당 부행장은 보고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다.
피해금액이 가장 큰 하나은행은 당초 대출사기 피해금액이 1000억은 넘지 않을 것으로 파악했다. 기업 한곳을 상대로 1000억원 넘게 대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하나은행의 이날 현재 피해금액은 1600억원을 넘어섰다. 전날 당국이 조사를 시작한 이후 600억원 이상 늘어난 셈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대출제한이 있는 게 아니라서 기업에 대해 1000억이 넘는 대출이 나간 것은 문제가 안된다"며 "사태를 파악중이기 때문에 정확한 집계가 바로 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국민은행과 농협은행 등도 '부당대출'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에 급급하다. 해당 은행들은 지난해 해외지점 부당대출 의혹부터 개인정보 유출사태까지 홍역을 앓은 터다.
국민은행은 "농협은행이 신탁기관으로 역할을 한 ABL(유동화 수익증권)에 단순 참가해 대출을 실행했다"며 "농협은행이 발행한 수익권증서를 담보로 대출 실행하였으므로 손실가능성도 없다"고 설명했다.
농협은행은 "당초 대출약정 규모는 500억원이지만 현재 대출잔액은 296억원이며, 모든 대출 취급 절차가 정상적이었다"며 "심사 자체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농협은 KT ENS에 대출 상환을 요구할 예정이다.
◇은행들, 대기업 이름만 믿고 2,3차 대출
금융권에서는 담보 평가가 상대적으로 엄격한 은행권에서 이번 대출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데는 부실한 대출관리시스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은행들은 KT ENS가 대기업 자회사란 점과 서류가 모두 구비됐다는 점만으로 대출을 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은행은 직접 KT ENS를 방문해 서류를 받는 등 현장조사를 진행했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추가대출시 별도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심사시스템에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첫 대출 심사 당시에 서류를 다 받은 만큼 대출을 다시 받을 때는 모든 서류가 아닌 매출채권확인서만 확인했다"고 털어놨다. 은행들은 첫 대출심사 때 받은 KT ENS와의 사업협약서, 법인인감증명서 등만으로 2차, 3차 대출을 해준 것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KT ENS가 대기업 KT의 자회사이기 때문에 서류가 모두 구비됐다는 것만으로도 대출을 해줬을 것"이라며 "공모자들이 대출 돌려막기를 통해서 이자를 꼬박꼬박 갚아왔다면 허위 서류임을 알아채기가 힘들다"고 시스템상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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