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 기자] 주총 시즌이 돌아왔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삼성과 LG 등 10대 재벌그룹 계열사 대부분은 오는 14일 오전 같은 시각에 정기 주주총회를 연다.
따라서 주주는 여러 회사의 주식을 보유했더라도 한 회사의 주주총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액주주들의 참여가 확대되면 경영진 등의 주요사안을 처리하는 데 걸림돌이 되므로 참여를 제한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주총회 일자가 겹치는 일정을 고려해 현재 제도적으로는 소액주주권 보호를 위한 전자투표제가 시행 중이다. 도입된 지 벌써 4년, 전자투표제를 둘러싼 현실은 어떨까.
상장업체 가운데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국내 기업은 전무하다.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현실에서는 '무용지물'.
◇오는 14일 계열사 주주총회를 앞둔 삼성(왼쪽)과 LG(사진=각 기업)
이와 관련해 한 기업의 재무팀 관계자는 "전자시스템 도입 비용도 부담스럽고, 특히 소액주주가 많은 회사의 경우 시스템이 정착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현실적 애로를 토로했다.
결국 기업 관계자가 아닌 소액 주주들의 주주권 행사 통로는 사실상 막혀있는 셈이다. 대다수 주주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의 수로는 그다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같은 불편을 치부하는 경향도 짙다.
그러나 제대로 권한을 알고 행사할 경우 실제 발휘되는 '주주의 권한'은 막강하다. 상법 조항에 따르면 특정 상장회사의 지분을 0.01%~3% 이상을 보유한 지 6개월이 지나면 대표소송 제기권, 주주 제안권,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 회계장부 열람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SK 소버린 사태는 주주총회가 대표이사의 행위를 추인하는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03년 SK그룹은 주주 '소버린 자산운용'의 경영권 공격으로 위기에 처했다. SK 주식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가 된 소버린은 5개 자회사에 이 지분을 쪼개 맡겼다.
이후 소버린은 주주총회를 통해 분식회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SK(주) 이사진의 사퇴, SK 텔레콤의 계열사 매각 등을 요구했다. 결과는 부결로 소버린의 완패였지만, SK의 승리로 남지도 않았다. 소버린은 주식 전량을 처분해 2년4개월 만에 투자금의 4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외국자본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도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경영진의 부실경영 책임을 묻기도 한다. 주주대표소송이란 경영진의 결정이 주주의 이익과 어긋날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영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상장법인의 경우 총 발행주식의 0.0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낼 수 있다. 소액주주들이 해당 회사에 소제기를 청구한 뒤 30일이 지나도 소제기가 없을 경우 가능하다.
국내 첫 주주대표 소송은 1997년 6월 제일은행이 한보그룹에 대한 부실 대출 책임과 관련해 과거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었다. 대법원은 2002년 이철수, 신광식 전 행장 등으로 하여금 은행에 1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직하던 1998년 10월 참여연대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전·현직 삼성전자 임원들을 상대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삼성종합화학 주식 저가 매각 등의 책임을 묻기 위해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했고, 2005년 대법원은 "이 회장 등은 총 190억원을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일부승소였지만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0월에는 한화 소액주주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했다"며 김승연 회장과 한화 전·현직 임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바 있다.
최근에도 소액주주의 주주대표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아시아나항공 소액주주들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비롯한 아시아나항공 전·현직 이사 9명을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냈다.
그러나 소수주주권이 행사되는 사례가 매우 적어 실제 영향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연말 공개한 '2013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현황'에 따르면 대표소송 제기권과 임시총회소집청구권 등 소수주주에게 인정된 소수주주권을 행사한 경우는 단 11차례 뿐이었다. 2대 주주(쉰들러그룹)가 주주권을 행사한 현대엘리베이터를 제외하면 6건, 한화 2건, KT서브마린, KT cs, KT is, 스마트로 등 각각 1건씩 행사했다.
전체 상장사 238개사 중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15개사다. 소액주주가 추천한 이사를 보다 용이하게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집중투표제다. 집중투표제가 시행될 경우 소액주주도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결권을 집중해서 투표를 할 수 있어 대주주 또는 사주 일가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렇듯 '소액 주주권'을 잘 활용하면 기업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의 경우 주주총회의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선택은 주주의 몫이다. 권한은 이미 주어졌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