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박근혜 정부 들어 정국을 주도해온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형국이다.
10일 검찰은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법정에 제출된 문건들을 위조한 정황이 포착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들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NLL 정쟁에 불을 지르는 등 그야말로 '거침이 없던' 국정원의 사방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공수사권을 검찰 또는 경찰에 이관하라는 개혁 요구를 받고 있는 국정원이 이를 악용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국정원의 수사기관으로서의 공신력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은 물론, 마치 '인혁당 사건'을 연상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조직의 존재 필요성에 물음표가 달리는 등 존폐의 기로에까지 직면해 있는 양상이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지자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 침묵을 지켜오던 박근혜 대통령은 유감을 표명하면서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주문하고 나섰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간은 별다른 잡음 없이 정보기관으로서 기능해오던 국정원이 새누리당 정권에서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게 된 원인은 정부와 여당의 '국정원 활용법'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을 달아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정황에도 불구,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자"거나 "국정원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라고 말해 국정원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바 있다.
새누리당 역시 지난해 열린 헌정사 최초의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민주당 김현·진선미 의원 제척 문제,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귀태" 발언 등을 빌미로 딴지를 걸어 국조는 파행을 거듭했고 종국엔 결과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한 채 특위가 종료되고 말았다.
정부 여당의 지원사격 덕분인지 국정원 스스로도 새누리당이 '노무현 NLL 포기 의혹'을 제기하자 기다렸다는 듯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통상 30년 비공개가 원칙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전격 공개하는 패기를 부렸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직속상관이 박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의 대화록 전격 공개는 사전에 청와대의 승인이 있었거나, 적어도 대선 불법 개입 의혹에 대한 면죄부를 받았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어 가능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대통령의 국정원 기대기와 감싸기 때문에" 국정원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들이 벌어진 것이라며 "이제라도 대통령은 분명하게 국정원과 선긋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전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뒤늦은 유감 표명은 여전히 안이하고 미흡하다. 국정원은 바로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는 직속 국가기관"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불법 개입 ▲대화록 무단 공개 국면에서 진작에 제동을 걸었어야 할 국정원을, 정부 여당이 야권 탄압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방치했다 끝내는 ▲간첩 증거조작 사태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국정원을 잉태한 건 결국 박 대통령(사진)과 새누리당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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