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포항의 2014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2014-03-20 14:46:16 2014-03-20 15:09:20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프로축구팀 포항에게 2014년은 변곡점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열심히 언덕길을 올라왔다면 올해는 내리막을 타는 기점이 될 지도 모른다.
 
시즌 초반부터 포항 팬들에겐 힘빠지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포항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러하다. 
 
◇지난 시즌 황선홍 감독과 포항 선수단의 모습. (사진제공=포항스틸러스)

포항의 장성환 사장은 "올 시즌에는 트레블을 해보겠다"고 했다. 트레블은 3개 대회 우승을 뜻한다. 충분히 세울 수 있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투자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포항은 K리그 클래식과 FA컵 2관왕에 올랐다. 최초였다. 게다가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이 같은 성과를 해냈다. 포항의 이런 행보를 놓고 "모기업인 포스코의 경영 악화로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게 축구계의 해석이었다.
 
황선홍 감독은 없는 살림에도 꾸역꾸역 가진 것을 짜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더 잘게 썰어갔다. 공격 진영을 짧게 끊어가는 포항 특유의 축구는 조직력으로 다져졌다. 포항은 특정 선수에 의존하기 보다는 조직력으로 뭉쳤다. 이 과정에서 '스틸타카'가 한층 더 완성됐다.

황선홍 감독에겐 '황선대원군'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이 모든 게 어우러져 '쇄국축구'라는 말도 나왔다.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이지만 어감은 좋지 않다.
 
모두가 포항의 우승을 놓고 기적이라 했다. 그러나 기적은 순간이고 축구는 길다. 포항의 지난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올 시즌에도 외국인 선수 영입은 언감생심이었다. 오히려 우승의 주역들이 사라졌다.

박성호, 노병준, 황진성이 스틸야드를 떠났다. 지난해 FA컵 우승 이후 노병준이 그라운드에 남아 축구화와 유니폼을 관중석으로 선물한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는 맨몸으로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노병준은 지금 K리그 챌린지(2부리그)에서 대구FC 유니폼을 입고 있다.

황진성의 경우 자체적으로 연봉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는데도 재계약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해 박성호, 노병준, 황진성 이들 셋은 포항이 터트린 63골 중 20골을 합작했다. 기록만으로 봤을 때 이 20골을 빼면 포항은 중위권 팀으로 내려앉는다.
 
포항은 올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1승2무를 기록 중이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아직 첫 승을 올리지 못했다. 개막 이후 2패로 밀려있다. 얇은 선수층으로 두 대회를 동시에 치르다 보니 갈수록 경기력이 떨어지고 있다. 후반 20분 이후 급격한 체력저하가 눈에 띈다. 많이 지적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무열, 조찬호, 배천석, 김승대 등 젊은 선수들이 주축으로 나서고 있지만 아직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기량이 문제가 아니다. 체력적인 문제가 크다. 구심점 역할을 할 무게감 있는 베테랑도 포항엔 없다. '1강'으로 꼽히는 전북과 같은 '더블 스쿼드'는 먼 나라 얘기다.
 
어떻게든 여름 이적 시장까지는 이대로 버텨내야 하는 모양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선수 보강이 이뤄질지도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현장을 찾는 팬들의 수도 줄었다. 세레소오사카와의 올 시즌 첫 경기에는 1만 명 이상의 관중이 몰렸지만 지난 18일 산둥루넝과 경기에는 관중 수가 반 토막이 났다.

◇구단을 걱정하는 포항스틸러스 팬들의 목소리. (사진캡쳐=포항스틸러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한 팬은 구단 홈페이지에 "구단이 어려울수록 우리가 관중석을 채우자라는 팬들의 충성심에 언제까지 의존할 것이냐"는 비판의 글을 올렸다. 이 외에도 구단 운영에 대한 불만과 선수 보강의 필요성을 토로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구단과 소통을 바라는 팬들의 목소리도 높다.
 
과거와 비교하면 2014년 포항의 행보는 더욱 아쉽다.
 
포항은 1973년 포항제철이라는 실업구단으로 창단했다. 이후 1984년 프로로 전환했다. 올해로 41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리그 우승도 5번 차지했다. '뿌리 깊은 명문구단'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최순호, 홍명보, 황선홍, 박태하 등 레전드로 불리는 선수들이 모두 포항을 거쳤다. 1990년에는 국내 최초로 축구전용구장인 스틸야드를 건설했다. 2001년 역시 최신식의 클럽하우스를 준공해 안팎으로 구단 운영과 성적 모두 우수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2003년에는 포철동초, 포철중, 포철공고를 클럽소속으로 전환해 선진국형 유소년 클럽시스템을 도입했다. 2009년에는 K리그 팀으로는 처음으로 클럽월드컵 3위에 올라 전 세계에 포항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기간 쌓아온 포항의 명성이 2014년을 계기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많은 축구팬들이 우려하고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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