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한때 세계 4위 조선소로 명성을 날렸던 STX조선해양이 채권단의 대규모 지원에도 불구하고, 끝내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지난 2001년 중소조선소에 불과했던 대동조선을 인수해 12년 만에 세계 4위 조선소로 끌어올리며 STX조선해양을 STX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시켰다.
STX조선해양은 강 전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를 탄생시킨 주역이었다. 하지만 그룹 부실이 전 계열사로 확산되면서 강 전 회장과 함께 STX조선해양의 신화도 막을 내리게 됐다.
STX조선해양은 31일까지 완전자본잠식 해소에 대한 입증자료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하지 않아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됐다. 자본금 잠식으로 상장폐지 대상에 오른 이들 기업은 3월31일까지 거래소에 자본잠식 해소를 입증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따라 STX조선해양은 일정 기간의 정리매매 기간을 거쳐 주식시장 상장을 폐지하는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STX조선해양은 지난해 기준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외부감사인으로부터 ‘의견거절’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완전자본잠식은 적자가 지속되면서 잉여금은 물론 납입자본금마저 모두 써버려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인 상태를 뜻한다. 연말 기준 재무제표 상 완전자본잠식이 확정될 경우 자동으로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STX조선해양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3조3487억4700만원, 영업적자는 2조3592억7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매출액 6조2211억9800만원, 영업적자 6986억8800만원에 비해 매출액은 거의 절반으로 줄고, 적자 폭은 3배 이상 증가한 최악의 성적표다.
지난해 2분기부터는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졌다. 지난해 2분기 말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6572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데 이어 3분기 말에는 마이너스 1조2091억원, 4분기 말에는 마이너스 2조6669억원으로 부실 규모가 대폭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와 올해 수차례에 걸쳐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실시하는 등 총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신규자금을 지원했지만 자본잠식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출자전환을 통해 채권단 지분율이 높아지면서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들이 STX조선해양의 대주주로 올라섰다. 주인의 손바뀜.
또 정부와 채권단은 STX조선해양에 대해 예외 조항까지 적용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상장폐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진해권역을 중심으로 경남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이 지역이 여당의 텃밭인 점을 감안해 지방선거에 대한 후폭풍도 고려하는 등 정무적 판단이 곳곳에 자리했지만 상장폐지까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
최근 채권단 일원인 우리은행이 추가 손실을 막는다는 이유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STX조선해양 채권의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등 채권단 내 진통도 이어졌다. STX조선해양 채권 비중이 높아지면서 부실채권비율이 상승했기 때문으로, 우리은행은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맺은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며칠 뒤 금융당국이 STX조선해양 추가지원으로 MOU 이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예외를 인정해 주기로 하면서 우리은행이 반대매수청구권을 철회했다. 구조조정 중인 기업 회생을 위해 금융당국이 예외를 인정해 주면서까지 전방위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추가 지원키로 1조8000억원 중 운영자금 일부가 STX조선해양에 지원되면서 생산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추가 부실의 주원인으로 꼽혔던 저가물량에 대한 계약 취소가 이어지면서 세계 조선소 순위도 추락했다. 조선업 호황기 때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대표 조선소들과 함께 빅4를 이뤘던 STX조선해양은 최근 수주물량을 잇따라 취소하면서 세계 10위권을 벗어났다.
지난해 12월 말 수주잔량 80척으로 세계 6위 조선소에 올랐던 STX조선해양은 올 들어 수주잔량이 57척까지 줄면서 지난달 말 기준 세계 11위로 5계단이나 내려앉았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24일 운영자금 부족 등 공정이 지연되면서 선주사가 2222억 규모의 LNG선 1척에 대해 계약을 해지했다.
한편 STX는 이날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해소됐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거래소에 제출했다. STX는 자본금 전액 잠식 해소를 위해 올 들어 무상감자와 자사주 소각, 유상증자 등을 거쳤다. 그 결과 자본총계와 자본금이 각각 6287억6300만원, 650억원 증가해 지난 5일 기준 자본금 대비 자본총계의 비율(자본총계/자본금)이 54.4%로 자본금 전액 잠식이 해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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