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국책연구기관 중에서 유일하게 조세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국조세연구원'은 지난해 7월 연구원의 명칭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으로 바꿨다.
◇ 글싣는 순서
사실상 조세정책뿐만 아니라 재정과 공공정책까지 연구하고 있는 연구원의 명칭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연구원의 명칭변경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단순한 명칭변경에 대한 우려보다는 조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원의 본질까지 변질되지않을까 하는 우려다.
한 민간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원의 명칭변경을 단순하게만 보기는 어렵다. 일종의 방향전환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연구원은 연구용역으로 먹고사는데 조세연구원이라는 명칭은 그런점에서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보다 다양한 연구용역을 받기 위해서는 명칭변경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조세'라는 글자조차 떼려했던 조세전문연구기관
실제로 지난해 조세연구원이 바꾸려했던 명칭은 '조세재정연구원'이 아닌 그냥 '재정연구원'이었다.
이미 1996년에 영문명칭을 'Korea Tax Institute'(KTI)에서 'Korea institute of Public Finance'(KIPF), 사실상의 재정연구기관으로 바꾼만큼 국문명칭도 확실하게 재정연구원으로 확정하고자 했던 것.
그러나 조세전문가들의 반발이 거셌다.
특히 세법연구와 조세정책연구를 맡겨왔던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강하게 반발했다.
세제실 고위관계자는 "그나마 조세라는 글자도 떼버리려 하던걸 겨우 말려서 '조세재정연구원'이라고 명맥을 유지하게 만들어 놨다"면서 "이름을 바꾸면 본질도 자연스레 바뀔수밖에 없다. 이미 연구원 인력의 절반은 조세가 아닌 다른 연구를 하고 있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세제실 관계자의 지적과 같이 조세연구원의 연구진 구성은 설립초기와 비교할 때 크게 달라져 있다.
1990년대 세법과 조세정책을 중심으로 연구진을 편성했던 조세연구원은 2007년에 '조세연구부'와 '재정연구부'를 처음으로 구분하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조직개편을 통해 공공기관연구센터를 추가, 공공기관연구에도 뛰어들었다.
대부분이 조세정책을 연구하던 조직은 연구기획본부, 조세연구본부, 재정연구본부, 공공기관연구센터 등 크게 4개의 부서로 분할됐다.
조세전문 연구인력은 100여명의 전체 연구인력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1991년 12월에 제정된 한국조세연구원법은 "조세제도와 조세행정에 관한 사항을 조사·분석함으로써 국가의 조세정책 수립을 지원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연구원 설립 목적으로 규정했다.
지금의 조직과 인력구성은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인 셈이다.
◇1997년의 조세연구원 조직과 2010년의 조세연구원 조직(자료=한국조세재정연구원)
◇ 조세전문 연구기관에 내려앉은 재정전문 원장들
조세연구원이 조세재정연구원으로 바뀌기까지는 원장들의 역할이 컸다.
1996년 'KTI'이던 영문명칭에서 Tax 대신 Finance를 집어 넣어 'KIPF'로 만든 것은 당시 3대 원장이던 최광 원장이다.
최 전 원장은 조세학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공공정책학이 전공이며 이후 복지부 장관과 국회예산정책처장, 국민연금공단이사장을 지내는 등 재정쪽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역대 원장들을 보더라도 조세전문가보다는 재정이나 거시경제쪽 전문가 일색이다.
정영의 초대원장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출신(재무부장관, 산업은행총재)의 재정전문가로 주로 국고와 증권보험, 국제금융쪽의 일을 했고, 故 박종기 2대 원장은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재정과 사회보장부분을 전공한 교수출신이다.
최근 한국은행총재직에서 물러난 김중수 전 원장(4대)은 거시경제를 전공한 두말할 것 없는 시장경제학자출신이고, 5대 유일호(새누리당 의원), 6대 송대희(감사원평가연구원장), 8대 황성현(인천대 교수) 등 대부분의 역대 원장들이 재정쪽에 무게를 둔 시장경제학자 출신이다.
그나마 7대 최용선 원장(전 서울시립대 세무학 교수)과 9대 원윤희 원장(서울시립대 사회정책연구소장)이 회계학이나 세무학 전문가로 꼽힌다.
◇조원동 전 조세연구원장(現 청와대 경제수석).ⓒNews1
연구원의 설립이념 자체가 조세제도 및 조세행정의 뒷받침에 있었음에도 재정이나 거시경제 전문가들이 원장직에 보임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
역대 원장들 중 상당수가 정치적인 인맥을 갖고 있거나 정부 부처에서 이른바 낙하산 인사로 떨어졌다.
매번 원장공모가 진행될때마다 내부에서 오랜기간 조세정책을 연구해 온 박사들도 함께 출사표를 던졌지만 최종적으로 선임되는 것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 외부인력이었다.
조세재정연구원으로 명칭변경을 추진한 장본인인 10대 조원동 원장(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역시 취임 당시 낙하산 논란이 있었다.
조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차관급)을 지내면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한 이후 한동안 보직 없이 물러나 있다가 2011년에 조세연구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조 전 원장도 과거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부에서 주로 경제정책을 입안한 거시경제전문가다.
◇ 세금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는데..전문인력은 부족
조세재정연구원의 명칭변경이 단순한 명칭변경의 의미를 넘어선다는 우려는 실제 연구원의 활동변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뉴스토마토>가 안전행정부 정책연구관리시스템(PRISM)에 게시돼 있는 기획재정부의 연구용역발주현황과 연구수행기관자료를 분석한 결과 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구원)이 수행한 기재부 용역에서 조세분야 연구용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들어 크게 떨어졌다.
조세재정연구원이 2006년에 수행한 조세분야 연구용역은 기재부에서 받은 연구용역 중 77%의 비중을 차지했지만 2008년에는 52%로 떨어졌고 2012년에는 50%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재정과 기타분야 연구용역 수행비중은 2006년 23%에서 2008년 48%, 2012년 50%로 급증했다.
대부분 조세분야 연구에 치중했던 조세재정연구원이 재정과 공공부문 연구용역을 함께 수행하면서 조세분야 연구용역의 비중이 줄어든 것이다.
전체적인 연구용역 건수가 늘어났다면 조세분야의 연구위축을 우려하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건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기재부로부터 받은 연구용역은 2006년 13건, 2007년 24건, 2008년 23건이었다가 2009년에 9건, 2010년에 12건으로 줄고 2011년에 21건, 2012년에 20건으로 10건에서 20건 안팎에서 머무는 수준이다.
전체 용역건수가 20건이 넘었던 2007년과 2008년, 2011년과 2012년을 비교해도 조세분야 연구용역은 2007년 13건, 2008년 12건, 2011년 11건, 2010년 10건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연구원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오는 9월까지 세종시로 기관을 이전하기로 예정돼 있다. 이미 건물의 신축공사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9월 중순이면 본격적으로 이전을 시작하게 된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전문인력 상당수를 잃었던 것처럼 조세재정연구원 역시 인력유출을 걱정하고 있다.
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지방으로 연구원이 이전하게 되니까 같이 내려가기 보다는 수도권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남겠다는 분들이 생길수밖에 없다"며 "3월 학기에는 유출이 거의 없었지만 연구원이 이전하게 되는 9월에는 또 2학기가 시작되니까 인력 유출이 제법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민들이나 정치권에서 세금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연구환경은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조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인력은 예나 지금이나 부족하다. 여러모로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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