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노사가 합의해서 기금형태로 운영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이 퇴직연금 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배경은 이렇다.
현행 퇴직연금제도는 회사가 금융회사(퇴직연금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퇴직연금을 은행이나 보험회사, 증권사에 운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수익률이 낮고, 대기업들이 퇴직연금을 계열사에 몰아줘 불공정 경쟁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의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은 92.6%(78조871억원)에 달했으나,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5.5%(4조6424억원)에 그쳤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선택권도 사실상 없어 근로자의 노후 보장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논쟁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기금형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김병덕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퇴직연금을 계열사에 맡겨 운용하는 계약형이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아니다"라며 "상품군 불충분, 자사상품 편입운용 과다, 감독 미흡 등으로 가입자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금형으로 선진화하면 수탁자 선정 과정에 근로자의 의견이 반영돼 선택권이 높아진다"면서 "특히 금융 전문가로 선정된 수탁자는 신탁 약관에 따라 가입자와 연금 수급자의 이익을 보장하도록 책임을 지게 되며 관리 감독도 쉽다"고 설명했다.
이태호 채권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 보험사 은행 등 퇴직연금사업자는 기존 이익을 잃어버리는 꼴이 되므로 반발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기금형도 시행 후 혼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기존 제도와 병행 추진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금융전문가들이 기금을 운용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일 제로인 퇴직연금연구소장도 "가입자의 노후대책을 안정적으로 수립하기 위한 복지와 미래를 생각한다면 기금형으로 가야 한다"며 "자산운용 전문가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면 강력한 법적 제재를 고안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금형 도입은 '시기상조'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는 "사회적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며 "계약형에서 축적된 역량이 사장되는 것은 물론 전문 인력 부족 문제와 이사회 구성과 운영을 둘러싼 갈등, 감독 곤란에 따른 가입자 보호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외이사 제도가 기업의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태에서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전문가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기금형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2005년에 퇴직연금제도 도입할 때 왜 기금형이 아닌 계약형을 도입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나라 노사 문화가 선진국과 달리 경직돼 있어 노사 합의가 쉽지 않고, 연금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지금이 연금 도입 당시보다 크게 바뀌지 않았다. 투자 문화 개선으로도 계약형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지난해 12월 말 84조원을 넘어섰고 가입자는 470만명으로 가입률 46.3%를 기록했다. 도입 9년 차인 올해는 적립금 규모가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직장인들이 우산이 걸린 서울 청계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이들의 우산이 될 수 있을까.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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