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지난 5월1일부터 열흘간 전북 전주에서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전주시가 전주를 세계 문화도시로 육성한다며 행사를 연지 벌써 15회째. 올해는 세계 44개국 181편의 영화가 초청됐으며 총 관람객 수는 6만8000여명으로 추산됐다.
그렇다면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동안 전주시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29일 안전행정부와 전주시 재정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2년 전주시가 영화제 개최에 들은 비용은 21억여원(국비 7억원, 도비 1억9000만원, 시비 13억원)이지만 수익은 8억9000만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에 도움은커녕 13억원의 적자만 남긴 것.
◇2014년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News1
이에 전주시는 입장료 수익과 고용효과를 따지면 약 21억의 경제효과와 8억원의 순수익이 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2년 전주시 재정자립도는 시 단위 지자체 평균보다 낮은 33.35%에 불과해 경제적 효과가 시의 재정난 극복에 도움이 안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후 전국 지자체들이 전주시와 엇비슷한 지방축제를 앞다퉈 열고 있지만 이런 행사들이 오히려 지자체의 재정위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자체가 예산에 대한 고민과 계획성 없이 우후죽순 행사만 늘리고 있어 비용 지출이 더 커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전국 243개 지자체가 계획한 행사는 총 555개로, 지역당 2개꼴로 행사가 열린다. 이는 지난 2008년 926개 행사가 열린 것에 비해 400여개가 줄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행사비용은 더 증가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의 행사비는 2008년 8377억원을 기록한 후 지난해는 752개 행사에 9845억원을 썼다. 2008년 이후 행사로 나간 돈만 5조6000억원을 넘는다. 지자체는 연말이면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행사경비를 오히려 늘려온 것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한 지역 축제와 행사경비 추이(자료=문화체육관광부, 통계청)
◇지역 축제 정확한 통계도 없는 정부..계획없이 흥청망청 돈쓰는 지자체
정부와 지자체가 행사 등에 열을 올리는 것은 관광산업 육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때문이다. 산업시설과 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자체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산업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대안은 축제와 행사를 통한 관광객 유치가 유일하다.
실제로 안행부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 전국 지자체가 지출한 행사 총경비는 9501억원이다. 이는 그해 세출결산의 0.56%에 해당하는데 ▲시·도 0.19% ▲시 0.98% ▲군 1.1%로 지역규모와 산업규모가 작을수록 지역 행사에 더 열을 올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수진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1980년대 전국 50여개에 불과했던 지역 축제는 지방자치제도 시행 후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주 5일제와 레저활동 열풍을 타고 관광산업이 급격히 성장하자 지자체는 한명의 관광객이라도 더 잡기 위해 축제 수와 규모를 늘리기 시작했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다.
물론 지역 축제가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이 안 됐던 것은 아니다. 한국관광공사와 경기개발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역 축제는 지역의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매출규모는 영화산업의 그것과 비슷하며 지자체 홍보와 주민의 애향심 고취에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지역에서 특색 없이 엇비슷한 행사가 연달아 열려 지역 축제만의 경쟁력과 창의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지역 축제의 양적 증가에 비해 질적 성장은 불만족스러워 축제가 국고나 지방재정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지역 축제를 공동주관하며 축제 바람을 불어넣었던 정부는 지역 축제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확인 결과 안행부와 문체부, 통계청, 관광공사 등 정부기관 어디서도 지역 행사에 대한 정확한 수와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안행부는 지난해 8월부터 지역 행사의 원가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지자체가 얼마의 돈을 썼고 수익을 거뒀는지도 집계가 안됐다.
축제만 장려하고 관리·감독 안 하는 정부와 계획성 없이 흥청망청 돈 쓰는 지자체가 만나 지역 곳간은 텅텅 비고 부채만 오른 것. 이 연구위원은 "문체부 지정 축제는 예산의 85.2%를 정부 지원에 의존한다"며 "대부분 축제가 2년~3년 만에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2014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가 파악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축제 현황(자료=문화체육관광부)
◇ 과도한 축제 경비에 곳간 사정 열악..복지·안전 등 다른 곳 돈 모자라
요즘 지자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정부의 복지공약 확대에 따른 재정부담이다.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젊은이들이 서울과 대도시로 몰리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복지예산 비중이 전체 예산의 50%를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더구나 최근 세월호 사고 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취약계층과 위험시설에 대한 안전관리까지 강화되는 추세라 사회·복지·보건 분야에 대한 예산부담까지 커졌다. 결국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복지 확대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지자체는 추경예산 편성과 중앙정부 지원금 확보에만 열을 올릴 뿐 행사비용을 줄이거나 지역 축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해 예산을 확보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올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등 4개의 행사를 계획한 경북 안동시는 올해 7812억의 예산을 편성했다가 추경예산으로 약 600억원을 증액했는데, 문화·관광 예산이 63억원을 늘었다. 반면 보건 예산과 공공질서·안전 예산은 오히려 5억원 줄었다.
이에 지자체가 행사를 여는 게 아니라 행사를 경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수진 연구위원은 "지속가능한 지역 행사가 되려면 합리적인 축제운영 시스템 만들고 축제 경영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며 "지자체 중심의 재단·사단법인 형태의 축제 운영조직을 세우고 전문인력을 배치해 축제 운영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지방재정 악화로 축제 예산감축이 예상되는데 정부 의존에서 벗어나 재정독립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후원회를 결성하고 방문객들에 입장료⋅체험료 등을 받거나 기념품 판매, 부스 임대사업 등으로 재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가 전국의 지방 축제 현황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필요한 행사와 불필요한 행사를 구분한 뒤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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