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금융위원회가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한 '은행 혁신성 평가' 1차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은행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성적이 좋은 은행은 최고경영자(CEO) 교체, 회사 합병 등을 앞두고 금융당국에 '미운털'이 박히지 않아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당분간 이러한 '줄세우기식' 평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상위권 은행, 기술금융 실적 순위와 일치
금융위원회는 28일 국내 은행권을 대상으로 한 '은행 혁신성 평가' 1차 결과를 발표했다. 이 평가는 기술금융 확산(40점), 보수적 관행개선(50점), 사회적 책임이행(10점) 등 총 100점으로 구성된다.
일반은행 8개 가운데 신한은행이 82.65점으로 1위에 꼽혔다. 이어 우리은행(76.8점), 하나은행(72.2), 외환은행(66점) 등의 순이었다.
지방은행은 총 7개 가운데 부산은행이 79.2점으로 점수가 가장 높았고, 대구은행(76.7점), 경남은행(70.45점), 제주은행(61.15점) 등이 뒤를 이었다.
은행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문은 '기술금융' 실적이다. 기술금융 부문 배점이 전체 점수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혁신성 평가 순위는 기술금융 대출 순위와 거의 일치했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은행별 기술신용대출 금액은 기업은행이 2조2165억원으로 1위, 신한(1조7360억원), 우리(1조3123억원), 하나(1조183억원)은행 순이었다. 기업은행은 특수은행이라 이번 순위 공개에서 빠졌다.
금융위는 정량 평가뿐만 아니라 정성 평가도 상당히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외환은행의 경우 기술금융 절대규모는 우리은행의 절반 수준이지만, 중기대출 금액 가운데 기술금융 비중은 2배 수준을 보이며 순위를 추월했다.
◇CEO 교체 앞둔 은행들 "선방했다" 안도
각종 현안이 산적한 은행들은 상위권의 성적을 받으면서 안도하는 분위기다.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는 점에서 '미운털'이 박힐 염려는 당분간 잊었기 때문이다.
이번 혁신 평가에서 1등인 신한은행은 기술금융 확산, 보수적 금융관행 개선, 사회적 책임 등 거의 모든 항목에서 은행권 최고 성적을 거뒀다.
특히 이달 초 병원에 임원해 치료중인 서진원 신한은행장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으로 평가된다. 건강 문제가 아니었더라면 오는 3월 임기가 끝나는 서 행장의 연임 시나리오에 힘을 받는 결과라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호응했다기 보다는 신한은행의 '따뜻한 금융'이라는 캐치프라이즈와 정부 추진 정책이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자평했다.
현재
하나금융지주(086790)가 조기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도 이번 평가에서 각각 3, 4위로 상위권을 기록했다.
특히 두 은행은 기술금융 실적 중에서 담보·보증없이 신용으로 지원하려는 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KT ENS 협력업체 대출사기사건에서 피해액이 가장 큰 하나은행이 신용대출 실적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은 눈에 띈다"며 "그만큼 사활을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한지 100일이 안된 신임 행장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갈렸다.
전체 순위에서 2위를 기록한 우리은행의 이광구 행장은 지난달에 취임했지만 체면을 세운 반면, 지난해 하반기 KB사태 등 혼란을 겪었던 국민은행의 윤종규 행장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임직원 성과급도 손봐.."노골적 줄세우기" 지적
하지만 은행권 공통적으로는 금융당국의 줄우세우기식 발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특히 소매금융, 기업금융 등 은행별로 강점이 있는 분야가 엄연히 구별되는데 혁신성 평가는 중소기업 여신 비중이 높은 은행일수록 좋은 점수를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평가에서 하위권 은행들은 기업금융보다는 소매금융에 강점을 가진 곳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은행들의 자율 경영을 제약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연합회는 이날 금융위원회의 혁신성 평가 결과 발표에 이어 '은행 내부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혁신성 평가를 임직원 성과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은행 혁신성 평가 결과가 은행 평판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라면 "성과급까지 건드리겠다는 것은 은행 임직원까지 일렬로 줄 세우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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