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전지현은 1997년 하이틴 잡지 '에꼴'의 표지 모델로 데뷔해 SBS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로 첫 연기경험을 쌓은 뒤 SBS '인기가요'에서 MC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SBS <해피투게더>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모 업체 프린터 광고를 통한 테크노 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영화 <엽기적인 그녀> 흥행하면서 배우 전지현의 몸값은 국내 최고가 됐다. 그럼에도 연기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연기력 성장과 인기에서 간극이 있다 보니 전지현은 배우보다는 'CF 스타'라는 이미지가 더 진했다. 이런 점을 의식한 탓인지 영화계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이마저도 크게 성공한 작품이 없었다. 광고 외에서는 큰 활약이 없었던 전지현이었다.
배우 전지현. 사진/뉴시스
그러던 전지현이 배우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작품은 영화 <베를린>이다. 전지현은 북한의 반역자로 몰려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연정희를 통해 정극연기를 훌륭히 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연기적인 면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보인 하정우에 못지않은 연기력이라는 찬사가 있었다.
이후 2012년 4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손자와 결혼한 전지현은 그해 7월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로 오랜 만에 관객 앞에 섰다. 영화 개봉 전 전지현은 “예니콜은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최고의 역할이자 필모그래피”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주인공 역할을 수 없이 해온 그가 주조연급 역할인 예니콜에 대해 최고의 필모그래피라고 말한 건 의아한 대목이었다.
영화를 보면 왜 전지현이 개봉 전에 그러한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엽기적인 그녀>와는 다른, 더 세련되고 활력있는 매력을 선보였고, 찰진 욕설은 물론 화려한 액션까지, <도둑들>은 전지현을 'CF 스타'에서 배우로 완전히 탈바꿈시킨 작품이었다.
이후 그가 선택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전지현의 놀이터였다. 백치미에 이기적인 성품을 가졌으면서도 긍정적인 매력의 천송이를 통해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라는 것을 입증했다. 상대 배우였던 김수현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 것도 전지현의 발칙한 연기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러면서도 슬픈 감정선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당시 서병기 대중문화평론가는 "만약 천송이가 밝고 긍정적인 면만 가지고 있었다면, 이처럼 폭발적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슬픈 감정선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에 풍성함이 생겨 대중이 좋아하고 있다"고 평했다. 중국에서 '치맥 열풍'까지 부른 <별에서 온 그대> 속 전지현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최동훈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암살>이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전지현이 호화캐스팅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극을 이끌어간 경우는 처음이다.
그가 맡은 안윤옥은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은 모습을 기억하고 조국을 되찾겠다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독립군이다. 스나이퍼에 뛰어난 기술을 갖춘 안옥윤을 연기한 전지현은 뛰어난 총 기술을 선보일 뿐 아니라 합이 복잡한 액션도 훌륭히 소화했다. 아울러 한을 지닌 여성의 아픈 감정선도 매끄럽게 표현했다. 아마도 앞으로 1년 간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은 전지현이 독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든다.
현장에서 함께한 감독들의 평가도 좋다. <암살>과 <도둑들>에서 함께한 최동훈 감독은 "전지현이 연기한 예니콜이 정말 웃겼다. 전지현이란 배우가 코미디를 정말 잘 한다. 그건 곧 연기를 잘한다는 뜻이다. 그런 전지현이 정극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며 "전지현은 한국영화계의 자산"이라고 칭찬했다.
영화의 흥행여부를 떠나 <암살>은 전지현에게 있어 인생을 통틀어 손에 꼽히는 필모그래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극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그 비중에 맞는 연기력을 펼쳤다.
<도둑들>에서 예니콜의 발목에는 'Happy ending is mine(해피엔딩 이즈 마인)'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전지현이 배우로서 이대로의 행보를 이어간다면 해피엔딩은 그의 것이 될 것이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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