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법원장 또 관료행, 사법권 독립 훼손 우려
인권위원장에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 내정
11~14대 임기 못채워…'행정부 진출 정거장'
2015-07-20 17:27:35 2015-07-20 18:57:53
이성호(57·연수원 12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박근혜 정부의 첫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을 두고 사법부 독립 침해 및 법원장 공백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직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또 다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행정부 고위관료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고위 법관 자리가 '행정부 진출 정거장'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4년 동안 법원장이 4번이나 교체되면서 전국 최대 1심 법원의 수장 공백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12년 이성보 제11대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취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서기석 제12대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취임 44일 만에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취임했다. 황찬현 제13대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지난 2013년 감사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30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며 인권을 보장하고 법과 정의 원칙에 충실한 다수의 판결을 선도했고 합리적 성품과 업무능력으로 신망이 높다"며 이 내정자를 인권위원장에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차관급인 서울중앙지법원장에서 장관급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승진'한 셈이 된다. 
 
서울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인 오영중 변호사는 "중앙지법원장이라는 자리는 대법관 다음의 법관 고위직인데 행정부 고위직 자리를 주는 방식으로 복속시키는 하나의 현상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오 변호사는 또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인권적인 시각에서 지적을 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 인권위원장의 자격이 있고 그렇지 않다면 인권위의 존재 이유가 없다"며 "인권위는 재판 이전의 인권 침해를 다루는 곳인데 확실한 증거에 따르는 등 재판적인 성격의 인권위가 된다면 오히려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정당화 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최강욱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위원장은 "사법부는 3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독립을 본질로 한다"며 "사법부 고위 법관의 행정관료 임명은 이런 사법부 독립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법인권연구소도 이날 논평을 통해 "이 내정자가 법관이라는 사법 관료의 경력 외에 인권 관련 활동이나 인권에 기여한 판결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정한 인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며 "이번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은 법조가 과잉 대표되는 현상을 심화시킨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최근까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후보로 계속 물망에 오르다가 지난 14일 대법원이 오는 9월 퇴임하는 민일영 대법관의 후임으로 추천된 27명의 명단에서 빠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법원과 청와대가 몇 주 전 이미 사전 조율을 거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선 법원의 판사들은 말을 극히 아끼며 관망하는 모습이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고위 법관의 행정부 행이) 최근 자꾸 반복되는 데 외부에서 그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인권위는 순수한 행정부라기 보다 법리성을 띠는 기관이라 그곳에서도 소신에 따라 직책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개인 소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에 근무하는 또 다른 판사는 "아무래도 법관이 다른 공직자보다 깨끗한 공직생활을 하기 때문에 청문회에 내놔도 크게 흠잡히지 않을 만해서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인권위는 비교적 사법적 판단하고 연결되는 부서로 볼 수 있고 중앙지법도 잘 이끄신 훌륭하신 분이 됐으니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전례를 보면 임기 도중 법원장이 나갈 경우 선임인 수석부장판사가 보통 대행 해왔는데 재판 외의 행정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내정자는 2009년 서울고법 형사부장 재임 시절 장모와 부인 등 10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호순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이 내정자는 "자신이 검거된 이유에 대해 운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등 재범의 위험성이 큰 만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2010년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진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씨에게 1심대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으며, '아람회'를 결성해 활동한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해전씨 등 5명에게 2009년 무죄를 선고하며 "법관은 사법부의 최후의 보루임에도 진실을 외면한 것에 대해 선배 법관들을 대신해 사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줄기세포 논문을 조작해 연구비를 타내고 난자를 불법 이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황우석 박사의 항소심에서 1심보다 형을 감경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 내정자는 이날 "중요한 직책의 후보자로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우선 인사청문회 성실히 임하고 통과한다면 국민 신뢰와 지지 받는 국가인권위원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청문회를 앞두고 있어 자세한 말씀은 차후에 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호 서울중앙지법 위원장이 국민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된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뉴시스
 
조승희 신지하 기자 beyon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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