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에서는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미국 일부 주(州)에서만 허용되던 동성 결혼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를 금지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찬성표를 던진 이번 판결로 미시건, 오하이오주 등 그간 동성 결혼이 허용되지 않았던 13개주를 포함한 미국 전역의 모든 동성 커플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004년 메사추세츠주에서 처음으로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된 지 11년만의 일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22번째로 동성 결혼을 전면적으로 허용한 국가가 됐다. 2000년 12월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를 비롯해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전세계 22개국에서 동성 간의 혼인이 가능하다. 멕시코의 경우 멕시코시티, 킨타나로주, 코아우일라주 등 일부 지역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6월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연방대법원 앞에 모여 미국 전역에서의 동성 결혼 허용을 기뻐하는 사람들. (사진=뉴시스/AP)
◇동성 결혼 합헌, 사회 인식 변화의 반영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동성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장조사기관인 퓨리서치가 지난 5월 미국의 성인남녀 2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가 동성 결혼 허용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의 뜻을 표한 비율은 39%로 집계됐다. 5년전의 같은 조사에서 48%가 반대를 하고 42%만이 긍정적인 의견을 보낸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57%라는 찬성률은 과거 20년간 진행된 조사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동성 결혼에 대한 인식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18~34세의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73%가 찬성을 했으며, 그 중 41%는 강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35~50세의 'X세대'는 59%가 동성 결혼 허용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냈다. 반면 '베이비부머' 세대인 51~69세 연령층에서는 반대가 48%로 찬성 45%를 근소한 차이로 앞섰고, 70~87세의 노년층에서는 반대 의견이 53%로 찬성보다 14%포인트 높았다. 인종별로는 백인(59%)과 히스패닉(56%)에서의 찬성 비율이 흑인(4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별로는 석사 이상(70%)에서 찬성 비율이 가장 높았고 학사(68%), 고졸 이하(49%) 등 교육 수준이 낮을 수록 동성 결혼에는 개방적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동성애자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도 짙어지고 있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이 게이나 레즈비언의 성적 취향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반면 변할 수 있다고 말한 비율은 33%에 그쳤다. 2003년만해도 바뀔 수 있다와 바뀔 수 없다가 42%로 동률을 이뤘다. 게이나 레즈비언이 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도 47%로 2013년 조사 대비 6%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란 답변이 40%, 성장 환경에 따라 달라진 것이란 대답이 7%로 각각 집계됐다.
◇"1명의 잠재 고객도 놓치지 말아라"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는 기업들의 행동에서도 포착된다. 4년전 메사추세츠 고등법원에 동성 결혼 허용의 가장 큰 장애물인 결혼보호법 폐지 청구 소견서를 제출하려 할 때만해도 구글, 나이키 등 유명 대기업의 서명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월마트, JP모건체이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지원군이 대거 등장했다. 이번 연방대법원의 판결 뒤에도 이들을 포함한 총 379개 업체의 서명이 담긴 소견서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전에는 제록스, 스카이텔 커뮤니케이션 등이 유명 심리학자인 로라 슐레징어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제공하던 광고를 모두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게이, 레즈비언에 대해 '비정상적', '생물학적 오류'라고 칭한 슐레징어의 발언이 단초가 됐다. 생활용품 업체인 프록터앤갬블(P&G)도 가을 시즌부터 그가 출연하는 TV프로그램에 광고나 협찬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성적 소수자를 포용하는 이들의 태도는 사회적 뿐 아니라 경영적으로도 훌륭한 선택이다. 동성애자들의 브랜드 충성도는 이성애자들보다 높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시장 조사기관인 와이텍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질문에 동성애자의 79%가 긍정했다. 이성애자 집단에서는 49%만이 같은 시각을 공유했다.
더군다나 고학력·고소득자로 알려진 이들은 구매력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기업들에게는 '니치 마켓'으로도 손색이 없다. 미국의 대형 보험사인 푸르덴셜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동성애자·양성애자·트렌스젠더(LGBT)의 연평균 소득은 6만1500달러(약 7165만원)로 나타났다.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인 5만달러보다 20% 이상 높은 수준이다. 시몬스 마케리서치 보고서에서는 게이 소비자들의 별장과 홈시어터, 개인 랩톱 구매 횟수가 이성애자들 대비 각각 2배, 5.9배, 8배 많다고 언급했다. 3억1900만명의 미국인 중 10~15%가 LGBT라는 킨제이 인스티튜트의 추산을 기반으로 한다면 3100만~4800만명 규모의 특수한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스칸디나반도 국가들의 인구 합과 비슷한 수준이다.
1명의 잠재 고객도 놓치지 않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지난달 26일 동성 결혼 합법화 직후 이용자들의 프로필 사진을 무지개색으로 컬러링 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한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다. 이보다 앞서 게이 커플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탈리아 이케아의 광고도 눈길을 끈다. 두 남자가 손을 잡고 서 있는 뒷 모습을 담은 이 포스터는 "우리는 모든 가족에게 열려있다"는 문구로 동성애자를 지지함을 밝혔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 돼 실제 결혼으로 이어질 경우 이케아에서 가구를 구매하라는 바람도 함께 담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인 스바루는 작년 10월 선보인 시리즈 광고에 "선택이 아니다. 형성되어진 것이다(It's not a choice. It's the way we built.)"라는 카피를 사용했다. 스바루는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니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자사의 고객 중 LGBT의 비율이 높은 것을 파악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오랜기간 마케팅을 해온 것과의 연관짓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스바루는 "교육자, 헬스케어 종사자와 같이 LGBT도 기업이 집중하는 소비자군 중 하나"라고 말해왔다.
◇15만쌍 동성커플로 5억달러 경제효과 기대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기업들 중에서도 웨딩 업계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젊은층의 혼인률 감소로 앞날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성 커플들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앞서 동성 결혼이 허용됐던 일부 지역의 결과에서도 증명이 된다. UCLA 윌리엄스인스티튜트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과거 동성혼 허용으로 인한 첫 3년간의 경제 효과를 20억달러로 추산했다. 그 중에서도 동성 커플의 혼인 건수가 가장 많았던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법적 기반을 마련한 2008년 이후 약 3630만달러의 부가가치가 창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윌리엄스인스티튜트는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13개 주에서도 동성 간의 혼인이 허용됨에 따라 5억4600만달러의 추가 경제적 혜택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방정부의 조세수입도 4770만달러가 증가하고 2069~6210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약 15만쌍의 동성 커플 중 최소 7만쌍이 향후 3년 안에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고 가정했을 때의 파급효과다. 지난 2013년 퓨리서치가 1200여 명의 LGBT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만이 결혼 의사가 없다고 밝힌 만큼 잠재력은 충분하다.
이와 동시에 동성 부부를 대상으로 한 변호사들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배우자이 질병이나 사망, 자녀 입양 등 그들만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혼이 합법화 된 만큼 이혼 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위한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벨 아일랜드 스콧블러프패밀리 변호사는 "동성 결혼은 사법 전문가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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