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PC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는 "PC를 보고 있으면 그것을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아이패드 프로가 점차 노트북과 데스크톱 PC를 대체할 것이다"고 말했다.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한다면 휴대전화를 제외하고는 추가로 필요한 사무용 전자기기는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쿡은 지난 2012년에도 "PC는 더 이상 디지털 생활의 중심이 아니다"라며 시장 전망을 비관했다.
반면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IT 기업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샤오미는 스마트폰, 태블릿PC에 이어 노트북으로 제품 라인을 확장할 전망이다. 올해 여름부터 꾸준히 제기된 PC 시장 진출설에 대해 회사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제조업체 관계자의 말을 빌려 구체적인 사양이나 가격 정보를 담은 보도가 계속되며 샤오미의 노트북 출시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애플과 샤오미의 엇갈린 행보는 PC 시장의 앞날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실 "PC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PC 종말론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심심치않게 등장하던 주제다. 전자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디바이스들이 잇따라 출시됨에 따라 스포트라이트에서 점차 멀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모바일 디바이스의 보급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던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이 같은 우려가 더 심해졌다.
◇전세계 PC 출하량 변동 추이(자료: statista)
실제로 지난 2011년 3억5281만대에 달했던 전세계 PC 출하량은 지난해 3억800만대 수준으로 위축됐다. 올해에도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3분기(7~9월) 글로벌 PC 출하량은 7370만대로 전년 동기대비 7.7% 감소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인 IDC의 집계에서는 10.8% 줄어든 7100만대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에 따르면 올해의 연간 PC 판매량은 2억8900만대로 7년만에 처음으로 3억대를 밑돌 것으로 추정됐다. 2년전 전세계 출하량이 10억대를 돌파한 후 더디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주요 PC 제조업체들도 위기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홈 엔터테인먼트가 PC 중심으로 설계·배치되고 모든 사무실의 책상 위에 데스크톱이 놓여있던 호시절이 지났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샤오산러 델 대중화권 매니징디렉터는 "사람들이 PC 구매를 결정했다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을 사고도 돈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자조섞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
PC 업체들의 위기감은 사업 전략 조정에서도 드러난다. 세계 최대 PC기업인 레노버는 모바일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실제로 지난 분기(7~9월) PC 부문에서 17% 감소했음에도 모바일 부문이 104% 급증한 덕에 전체 매출이 16%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2위 업체인 휴렛팩커드(HP)는 이달 중 하드웨어 및 서비스 부문을 컴퓨터와 프린터 사업 부문에서 분사해 'HP 엔터프라이스'로 만들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전체의 10~12%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의 직원을 줄일 계획이다. 지난 2012년부터 진행된 구조조정으로 5만5000명을 줄인 데 이은 대규모 감원이다. 3위 업체 델은 데이터스토리지 업체 EMC를 670억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수익성이 좋고 빠르게 성장 중인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서비스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쌓겠다는 심산이다. 소니는 이미 지난해 초 '바이오' 브랜드로 유명한 PC 사업부를 매각했다.
◇ '적과의 동침' 택한 기업들…"침체 끝 반등 온다"
그럼에도 PC 제조업체들은 PC 시장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현재의 PC 시장이 저점을 지나 기술적 반등을 시도하는 구간에 있다"며 시장 부흥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중국 IT전문 리서치기관 아이리서치는 왕촨둥 레노버그룹 부사장의 말을 인용해 "어떤 산업이든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하면 침체기를 겪기 마련"이라며 "하강의 끝은 새로운 상승"이라고 전망했다. PC의 쇠락을 야기했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성장이 둔화되는 시점에 봉착한 반면 PC는 다시 한번 도약할 때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가트너와 IDC의 조사에서도 2017~2019년 사이 PC 판매량의 반등이 나타날 것으로 예견됐다. 왕 부사장에 따르면 "시장 부흥의 열쇠는 소비자의 PC 교체 욕구를 얼마나 자극할 수 있는가"이다. 업계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사용 연한이 4~5년을 넘긴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은 5억대에 달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컴퓨터가 기능상 큰 무리가 없다는 이유로 교체를 거부하고 있다.
전세계 3대 PC 제조업체인 레노버, HP, 델과 PC용 칩 제조업체 인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프로모션도 PC 교체 수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세계 최대 PC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지난 10월19일부터 6주간 'PC Does What?'이란 이름을 달고 진행 중인 이 프로모션은 PC 업계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사상 처음으로 연합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각자의 신제품을 앞세운 개별적인 마케팅을 실시하는 것보다는 PC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파이를 키운다는 '대의'를 위해 경쟁자를 포용하는 과감한 길을 택한 것이다. 5개 기업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들은 지난 6월부터 매주 만나 소비자들에게 PC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다. 마침 이 때는 MS의 새 운영체제(OS)인 '윈도우10'과 인텔의 6세대 코어 프로세서 '스카이레이크'의 출시를 앞둔 시점이었다. 프로모션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레노버, HP, 델, 인텔, MS 등 글로벌 PC 제조업체들은 시장 부흥을 위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순에서 지난달 중순부터 6주간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PC Does What'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각사 담당자들. (왼쪽부터) 패트릭 무어헤드 프린시팔 애널리스트, 카렌 퀸토스 델 CMO, 안토니오 루치오 HP CMO, 데이비드 로만 레노버 CMO, 스티브 펀드 인텔 CMO, 크리스 카포셀라 MS CMO. (사진/PC Does What 홈페이지)
그 결과물로 제작된 1분30초 남짓의 영상물에서는 ▲구조 대원들이 급박하게 헬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360도로 접히는 PC를 이용하는 장면 ▲망망대해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구명보트에 앉아 유유자적 PC를 사용하는 장면 ▲호텔 직원이 아침 신문을 배달하는 도중 특정 객실에는 180도로 펼쳐진 PC를 문 틈으로 밀어넣어 주는 장면 ▲화려한 그래픽이 동원된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모든 장면의 말미에는 "PC가 무엇을 한다고? 이젠 당신의 PC에서도 즐기세요"란 문구가 이어진다. 얇은 바디, 고화질 영상, 길어진 배터리 수명 등 개별 기업 신제품이 강조코자 하는 혁신적 기능을 적절히 버무려 PC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보다 나은 점을 설명한 것이다. 이 기획에 참여한 안토니오 루시오 HP CMO는 "모바일 디바이스로 즐길 수 있는 혁신적인 서비스나 앱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PC가 기반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PC의 효용을 강조했다.
◇생산성과 휴대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업계에서 바라보는 PC의 미래는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 생산성이라는 PC의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휴대성이나 편리성 등 모바일 디바이스에 비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형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아이리서치는 "글로벌 업체들이 모두 PC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있다"며 "모바일 단말기와 기존 PC의 결합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분석했다. PC 업계의 공동 광고에서 보여졌던 180도로 펼쳐지는 제품, 360도로 접히는 제품 뿐 아니라 밀어서 커버가 열리는 제품, 화면을 탈부착 할 수 있는 제품 등이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란 시각이다. 가트너가 올인원PC, 울트라 미니PC, 스틱PC를 데스크톱의 진화 방향으로 지목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 방향에서 선방하고 있는 것이 MS의 서피스 시리즈인데, PC와 더불어 노트북, 태블릿PC, 스마트폰까지 아우르는 일체형 OS '윈도우10'이 더해지며 시너지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인텔이 2in1 PC에 대한 지원 강화 방침을 세운 점 역시 새로운 대세 형성에 호재가 될 전망이다.
한편 IDC는 "향후 PC 시장은 레노버, HP, 델, 애플 등 4대 업체로의 집중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며 "그 밖의 10위권 업체들 중 2개 정도는 철수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 마윈도 PC 시장에 대해 "어제는 화려했고 오늘은 잔혹했으며 내일은 더 잔혹하겠지만 모레는 분명 아름다울 것"이라며 "그러나 대다수는 내일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비슷한 전망을 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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