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류석기자] 지상파와 케이블 등에서 제공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을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VOD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방송시장에서는 시청자 중심의 치열한 콘텐츠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기존 방송사업자 뿐 아니라 미국의 넷플릭스(Netflix)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사업자들도 콘텐츠 제작·공급 경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표한 'VOD 서비스 확대로 인한 시청 행태 변화가 방송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VOD 서비스 확대에 따른 시청 행태의 변화로 인해 기존 방송 사업자들도 플랫폼 사업자들의 서비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업자 간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이같은 모습은 실제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자주 목격된다. VOD 서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시청자라면 기존 방송사업자들이 한 프로그램의 전 에피소드를 자사의 온라인 및 모바일 플랫폼 등을 통해 제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홍보영상 갈무리
◇VOD 서비스 확대…'몰아보기' 시청자 확산
보고서에서는 VOD 서비스 이용자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다양한 디바이스의 출현을 꼽았다. 김호종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방송미디어연구실 연구원은 "과거에는 영상을 시청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매체가 TV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인터넷 기반 기술과 속도의 발전으로 각종 모바일 기기들을 통해 방송 시청이 가능하게 됐다"며 "이에 시청자들은 능동적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VOD를 시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릭슨 컨슈머랩(Ericsson ConsumerLab)이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주요국의 TV·동영상 시청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 여전히 TV를 통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지만, 지난 2011년에 그 응답률이 50% 이하로 떨어진 이후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반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랩탑을 통해 방송을 시청한다는 이용자는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올해는 약 40%에 근접할 전망이다.
VOD 서비스의 확산은 시청자들의 시청 행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한 주씩 기다려가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보다 한 번에 전 에피소드를 몰아서 보고싶은 수요가 VOD 서비스 확산과 맞물리면서, 몰아보기식 시청 행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50%가 몰아보기식 시청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 중 55%는 전년도에 비해 몰아보기식 시청 빈도수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또 에릭슨 컨슈머랩의 조사에서도 VOD 서비스 이용 비율이 점점 증가해 2015년에는 세계 주요국에서 50%를 넘는 사람들이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 VOD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호종 연구원은 "VOD 서비스를 통해 한 번에 연속적으로 시청하는 소위 '몰아보기'식 시청이 가능해졌고, 또 광고와 엔딩 크레딧을 삭제해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간 연결 시간을 줄여 서비스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와 같은 시청 방식이 점점 대중화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업자 간 콘텐츠 경쟁 격화…차별화 방안 놓고 고심
VOD 서비스의 확대는 방송사업자들 간 콘텐츠 공급 경쟁에도 불을 지폈다. 기존 방송사업자들 같은 경우 보다 높은 광고 수익을 얻기 위해 최대한 자사의 콘텐츠를 시청자들이 많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양적 경쟁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또 매달 일정금액을 지불하는 정액제 방식으로 과금하는 주문형 VOD 서비스인 'SVOD' 서비스의 등장도 이러한 콘텐츠 공급 경쟁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2014년 한 해 동안 미국의 지상파, 케이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주요 시청 시간대에 방영된 시리즈물 편수가 1715편에 이르고, 신규 제작된 작품은 352편에 달했다. 케이블 채널 기준으로만 살펴봐도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 편 수는 2004년 45편에 불과했으나, 2014년에는 199편으로 10년 간 300% 이상 증가했다.
양적 경쟁과 더불어 콘텐츠 자체가 갖고 있는 경쟁력 경쟁도 치열하다. 양적 경쟁을 통해 탄생한 무수한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시청자의 이목을 끌만한 차별화된 오리지날 콘텐츠 제작 압박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 콘텐츠의 내용이 가진 경쟁력 뿐 아니라 몰아보기식 시청 행태의 확산에 따른 이에 적합한 콘텐츠 생산도 요구되고 있다. 김 연구원은 "미국 TV 시리즈의 경우, 방송사들이 한 시즌 전체를 완제품 형태로 제작하도록 주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많은 방송사들이 새로운 수익모델로써 VOD 시장을 염두에 두고, 몰아보기에 적합한 형태의 포맷 위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방송사업자들은 변화하는 시청자들의 시청 행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편성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의 지상파 네트워크인 NBC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신작 드라마의 두 에피소드를 공개한 직후 13개의 전체 에피소드를 NBC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을 통해 공개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또 케이블 사업자 'Starz'도 드라마의 모든 에피소드를 자체 제작 모바일 앱과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를 통해 제공한 바 있다. 이와 반대로 온라인 스트리밍 사업자인 'Hulu'는 매주 한 편의 에피소드를 공급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편성 전략을 취하기도 했다.
김호종 연구원은 "VOD 서비스가 실시간 방송과 유료방송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여러 조사에서 SVOD 서비스는 유료방송을 가입하면서 추가적으로 가입하는 보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도출됐다"며 "VOD와 실시간 방송이 서로의 역할을 하며 방송시장 전체의 수익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석 기자 seokitno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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