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은행권에서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앞세운 전담조직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습니다. 은행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에 발맞추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다만 금융정책이 바뀔 때마다 형식적으로 기존 조직의 이름을 바꾸거나 성격이 다른 업무를 한데 묶으면서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SG·상생 조직에 생산·포용금융 덧붙여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024110)은 최근 하반기 조직개편을 통해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전담하는 '생산적포용금융부'를 신설했습니다. 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확대하는 업무와 개인채무조정, 취약차주의 재기 지원 업무를 한 부서에서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앞서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도 생산적금융이나 포용금융을 전면에 내건 조직을 잇달아 신설하거나 개편했습니다. 기존 ESG·상생금융 관련 부서의 이름을 바꾸는가 하면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던 업무를 통합하고 새 정부의 핵심 정책 용어를 조직명에 추가하기도 합니다.
우리은행은 기존 'ESG상생금융부'를 'ESG포용금융부'로 변경했습니다. 부서가 담당하던 사업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조직개편 과정에서 '상생' 대신 '포용'이라는 정책 용어를 내세웠습니다.
국민은행도 기존 ESG상생금융부가 담당하던 업무 일부를 별도 포용금융부로 넘겼습니다. 신한은행은 과거 상생금융 전담조직을 신설한 데 이어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함께 담당하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은행 역시 상품 관련 부서와 정책금융 관련 기능을 통합해 포용금융을 전담하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조직 개편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빠르게 맞추는 행보로 해석됩니다. 지난 정부에서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상생금융’이 주요 정책으로 부상하면서 은행마다 관련 부서와 전담팀이 생겼습니다. ESG 경영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부서명 앞에 ESG가 붙었습니다.
현 정부에서는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쏠린 자금을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으로 돌리는 생산적금융과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포용금융이 핵심 정책입니다.
은행권에서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앞세운 전담조직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의 영업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CIFO 도입 앞두고 조직부터 정비
문제는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의 정책 대상과 업무 성격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생산적금융은 첨단산업과 혁신기업,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과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며, 포용금융은 저신용자와 취약차주, 소상공인 등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을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금융의 공적 역할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두 정책은 비슷하지만 고객군과 심사 기준, 위험관리 방식, 성과지표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내부에선 사회공헌과 소상공인 지원, 서민금융 상품 개발, 취약차주 채무조정, 중소·혁신기업 금융 등이 한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다"며 "아직 조직의 업무 경계도 모호한데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금융당국이 포용금융최고책임자(CIFO)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들이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CIFO는 금융회사 내 포용금융 전략 수립과 관련 사업 추진, 성과관리 및 내부통제 등을 총괄하는 임원급 책임자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권부터 CIFO를 지정하도록 하고 향후 전 금융권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포용금융을 일회성 사회공헌 사업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와 경영전략에 내재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아직까지 CIFO 선임 관련 가이드라인을 받지 못한 은행들이 전담부서부터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포용금융 담당 임원 선임과 관련해 은행 내에서는 서로 다른 위험을 한 조직에서 관리하면서 공급액만 성과지표로 삼을 경우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은행들은 현재 리스크관리책임자(CRO), 소비자보호책임자(CCO), 준법감시인 등을 중심으로 책무를 세분화해 운영하고 있는데요. 포용금융 책임자가 신설될 경우 기존 리스크 관리나 소비자보호 조직과 사실상 상반된 목표를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CRO 조직은 연체율과 자산건전성 관리, 자본비율 안정 등을 최우선 목표로 두는데요. 반면 포용금융 책임자는 상대적으로 신용위험이 높은 차주에 대한 공급 확대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과적으로 한쪽에서는 위험을 줄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포용금융의 기준 자체가 아직 모호하다는 점도 부담 요인입니다.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확대를 의미하는 것인지, 정책서민금융 공급 확대인지, 혹은 소상공인 만기연장·상환유예 같은 지원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데요.
구체적인 성과평가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전담부서를 신설하고도 기존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관련 업무를 한 조직에 모으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면서도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은 대상과 평가 방법이 다른 만큼 조직을 합치는 것보다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포용금융을 금융회사 경영 전반에 내재화하기 위해 '포용금융 최고책임자(CIFO)'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내부의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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