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찬반 논쟁…탈출구 안 보이는 '노동개혁'
"직장인 97% 반대""연내 처리 절실"…환노위 노동관계법 공청회도 '갑론을박'
2015-12-22 17:49:12 2015-12-22 17:49:12
"기간제 사용 기간이 연장되면 평생 비정규직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민주연합노조 부산보건소지부 이진욱 부지부장은 해고자다. 정부의 방문보건사업 일자리 정책으로 5년을 지냈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2년 더 일했다. 그리고 비정규직 사용 기한인 2년이 지나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까지 부산 14개 보건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170여명도 같은 처지였다.
 
이 부지부장은 22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과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국회에서 기간제법·파견법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자리에서 "상시·지속 업무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노동개혁"이라고 말했다. 장그래본부가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직장인 92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이날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7%(8970명)가 비정규직 기간 연장을 반대했다.
 
4시간여 뒤 청년 단체 회원들도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이 주최한 '노동개혁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이른바 '노동 5법'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보수연합 류현아 대표는 "일자리를 찾는 청년과 능력이 있어도 구직을 포기한 이들을 합치면 100만 명이 넘는다"며 "국회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안 통과만을 기다리는 청년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노동 5법'의 연내 처리를 재차 주문한 이날 국회는 하루 종일 노동개혁을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풀어야 한다는 진단은 비슷했다. 하지만 기간제법·파견법 개정 등을 둘러싼 해법은 전혀 달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날 노동 관계법 공청회를 열었다. 법안 심사가 평행선을 달리자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핵심은 기간제법·파견법이었다. '고용 안정'을 외치는 여당과 '평생 비정규직화'라는 야당의 간극은 여기서도 되풀이됐다.
 
◇기간제법 "정규직 전환 무력화""고용안정에 도움"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간제법·파견법은 노사정 대타협에 어긋날 뿐 아니라 상시·지속 업무에 비정규직을 확대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교수는 시행령으로 채워진 법안 내용을 문제삼았다. 그는 "기간제법만 봐도 법률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 많다"며 "국회가 법률을 대충 통과시키면 대부분을 행정부 뜻대로 하겠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기간제법 개정안은 비정규직 사용 기한을 2년 늘리는 내용을 담았다. 35세 이상 노동자가 총 4년까지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같은 개정안이 비정규직 법적 지위를 더 불리하게 만든다고 봤다. 그는 "현행법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되지만, 개정안대로라면 4년이 지났을 때 대통령령으로 정한 합리적 사유가 있으면 정규직 전환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반면 한국노동연구원 김승택 본부장은 "국내외 경제 불안 요인을 감안하면 내년과 2017년은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는 시기"라며 "정규직 전환이 당분간 어려워진다고 봤을 때 기간제로 남아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는 것이 고용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파견법 "파견금지 원칙 무너져""변화 적응해야"
 
파견 허용 범위를 늘리는 파견법 개정안도 논란이 됐다. 정부·여당은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 뿌리산업에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안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파견금지 원칙이 허물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은 "뿌리산업까지 파견을 허용하면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 파견을 금지한다는 원칙이 무너진다"며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을 합치면 중복을 제외해도 426~537만명 정도다. 전체 노동자 4명 중 1명을 새로이 파견 대상에 추가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10대 재벌 노동자 130만명 가운데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40만명"이라며 "대부분 불법파견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 윤희숙 연구부장은 "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만이 옳고 표준이라고 하면 생산방식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며 "기간제, 파견 등이 앞으로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각을 돌리면서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입구 자체를 막는 것보다 비정규직 근로조건 향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노사정 합의 주체인 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총도 대립각을 세웠다. 경총 이호성 상무는 "노동시장 개혁은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라고 했지만, 한국노총 정문주 본부장은 "합의를 어긴 노동 5법을 수정하거나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맞섰다. 여야 역시 6시간여에 걸친 토론에도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다. 환노위는 23일 법안소위원회를 열어 '노동 5법' 심사를 재개한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노동관계법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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