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취업규칙·통상해고 지침을 놓고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고용부는 두 지침을 ‘부당해고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노동관계법에 따르지 않고 노동권을 제약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우려가 높다.
우선 두 지침의 공식 명칭은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과 ‘공정인사 지침‘이다. 각각 근로자 과반의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가능한 사례, 저성과자에 대한 통상해고 요건 및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두 지침의 효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통상해고를 인정하는 기준이 법률이 아닌 판례에 인용된 조리이기 때문이다.
먼저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대법원이 판례에서 제시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경우 근로자 과반의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취업규칙 변경 시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판단 기준은 ‘불이익의 정도’, ‘취업규칙 변경 필요성’ 등 6가지다.
통상해고 역시 근로기준법에 존재하지 않지만 판례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고용부는 지침에서 객관적·합리적 기준에 의한 공정한 평가를 진행했고, 교육훈련·배치전환 등 개선의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개선 가능성이 없고, 업무상 상당한 지장이 초래돼 사회통념상 고용관계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저성과자 통상해고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특정한 사례에서 현행법상 판단 기준이 없을 때 예외적으로 인정돼온 기준이지, 어느 상황에나 적용되는 ’일반적 원칙‘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사업자와 노동자 간 관계는 사회경제적 우열관계다. 1대 1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라며 “노동관계법은 이런 불균형한 관계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회법이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노동자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 그런데 법에도 없고 법의 취지에도 반하는 지침을 만들어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판례는 어떤 사안에 일반적이고 획일적이게 적용되는 규범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지침에선 합법이라 판단돼도 법원에서 위법으로 판결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침으로 인한 소송 등 법적 분쟁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법관이 조리를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그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항소와 상고가 인정되고, 확정된 판결에 대해 재심이 진행되기도 한다”며 “판례에 인용된 사회상규나 통념을 언제든 적용해야 한다, 절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고 획일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법률에 규정이 있다면 법률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노총은 당초 양대 지침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낼 방침이었으나, 지침의 법적 강제성이 없어 ‘효력’을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내부 검토에 따라 투쟁 방향을 선회했다. 앞으로 한국노총은 산하조직을 중심으로 지침을 거부하되, 사업장에서 지침을 근거로 취업규칙을 변경하거나 통상해고를 시행할 경우에는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제3공용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정부 2대 지침 최종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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