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서도 세계경제는 좀처럼 회생의 기운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중반부터 현실화되고 있는 ▲중국 경제성장 감속과 금융시장 불안 ▲수요 감퇴와 공급 과잉 우려를 배경으로 한 국제유가 급락 추세 ▲기존 양적완화 정책으로부터 전환해 금융정책 정상화를 위한 미국 금리인상 등 각종 악재들이 계속돼 불안정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 1월2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일찍이 경험한 바 없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13년 4월 도입한 ‘양적·질적 금융완화 정책’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됐고 각국 정책대응에도 새로운 변수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박상기 숭실대 겸임교수의 진단을 통해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배경과 과제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 1월29일 일본은행은 중국 경제성장 감속과 금융시장 불안, 국제유가 급락 추세 등을 배경으로 이례적인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결정했다.
일본은행 구로다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정한 움직임에 따라 기업신뢰도 개선과 개인들의 디플레 마인드 전환이 늦어지고 물가 기조에 악영향을 미칠 리스크가 증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구로다 총재는 “이번 결정이 지속되는 글로벌 불안 요인들에 의한 일본 경제 리스크가 높아지는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회의에서 심의위원들 간에는 경제의 선순환을 가속시키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찬성파와 시장 혼란과 소비자들의 오해를 불러 올 가능성이 크고, 디플레 마인드 불식 연결보장도 없다며 우려하는 반대파의 격론이 있었고, 최종 결정도 5:4 호각의 찬성다수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제도란 민간은행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예금 잔액(법정준비금 초과분)에 대해 보관료 형식으로 이자를 지불하는 것이다. 이번 일본은행이 종전 양적완화 정책에 더해 마이너스 금리라는 과감한 정책 수단을 추가한 배경은 일본 경제의 최대 고질병이 된 디플레이션 공포다.
즉, 탈 디플레 정책을 기본 전제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추진에 엔고 진행 및 유가하락이라는 복병을 만나 정책 기조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또 자칫 이대로 가다가는 기업 경영 심리가 더욱 악화, 금년도 임금 교섭을 위한 ‘춘투’에서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은행은 이번 결정과 동시에 발표한 경제·물가 정세 전망에서 물가의 기조적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끼고, 당초의 탈 디플레 목표인 ‘소비자물가상승률 2%’ 달성 시기도 2016년 후반에서 2017년도 전반으로 연기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은행이 중시하는 에너지 관련 품목을 제외한 핵심소비자물가가 작년 봄 이후 상승해서 현재 1%대 전반에 머물고 있으나, 이대로 가면 금년 봄에 정점을 지나 축소로 전환돼 탈 디플레를 향한 흐름이 끊어질 상황에 처한 것이다.
당초에 일본은행이 탈 디플레의 지표로 삼았던 일본은행판 소비자물가지수가 순조롭게 상승해 온 것은 첫째로 엔화의 대미 달러화 가치가 연초만 해도 일시적으로 125엔대까지 하락하는 등 외환시장환경 개선이 있었고, 둘째는 작년 임금 교섭에서 2년 연속 인상이 실현되는 등 고용·소득 환경이 개선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외 제반 경제 및 시장 상황이 급변돼 엔화 가치는 일시 115엔대까지 상승했고, 일본 국내 물가수준 하락을 견인하는 유가하락도 멈추지 않고 있다. 현 추세에 급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될 위급한 상황으로 돌변한 것이다.
특히 일본은행은 최근 외환시장에 엔화표시 자산 매입 현상 증가를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투자가들은 저금리 통화를 부채로 고금리 통화를 자산으로 운용, 금리·환율 양방의 고수익을 기대한다. 이에 따라 투자가들이 리스크 선호적이면 엔화 부채가 늘어나 엔화 가치가 하락하고, 리스크 회피적이 되면 엔고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리스크 회피 마인드 수준을 넘어 엔화 매입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엔화 자산화’라는 시장 움직임에 대응해 일본은행은 엔화의 매력을 일거에 낮추기 위한 즉응 조치로 민간은행들의 당좌예금에 대한 금리를 ‘마이너스’로 하는 과감한 조치를 택한 것이다.
물론 이번 조치로 최근 엔고의 배경이 되는 중국 경기 감속 및 글로벌 유가 하락 추세 정착 등에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 동안 진행된 일본은행의 디플레 탈피를 위한 ‘마지막 전쟁’의 최종 향방은 아직 예단을 불허한다.
2012년 아베 정권은 출범 후 일본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아베노믹스’를 기치로 회심의 경제정책을 내놓았다. 즉 금융완화(물가상승 2% 달성)+재정확대(대규모 공공투자)+새로운 성장전략(규제개혁 및 민간투자 유도)이라는 ‘세 개의 화살‘로 구성된 정책 패키지다. 아베 정권은 내·외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고, 일본은행도 이에 부응해 담대한 정책을 채택했다.
마이너스 금리 하에서는 금리가 빌린 측으로 역류하는 것이다. 자금을 빌리는 측이 금리를 얻기 때문에 설비투자 혹은 주택구입 등을 촉진할 수 있다. 투기 세력의 엔화 매도도 늘어 엔화 약세를 촉진할 수 있다. 개인 소비도 자극할 수 있다.
반면 금융 기업들은 융자시 지불하는 이상으로 예금자들에게 마이너스 금리(수수료)를 부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역마진으로 수익에 타격을 받게 된다. 일본은행 입장에서도 은행들이 자금을 예치할 동기가 희박해져 본원통화가 감소, 시중에 자금 공급 늘리기가 어렵게 될 수 있다.
시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다. 미국 피터슨국제금융연구소 포젠 소장은 “일본은 과거 3년에 걸쳐 대규모 금융 완화를 지속해 와 엔화 가치가 달러 당 125엔까지 하락했으나 물가상승 효과도 적었고, 환율을 통한 효과도 명확치 않았다”면서 “마이너스 금리 제도로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개인들의 신뢰에 주는 효과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생명보험 및 은행의 영업실적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영국 이코너미스트지도 “중국 인민은행이 외환시장을 통제하는 것을 ‘비정통적 수단’이라고 비난한 구로다 총재가 스스로 비정통적 수단을 선택했다”고 평하면서 “말처럼 그다지 극적이지도 않다. 기존 예치금에는 종전대로 금리를 지불하고, 신규 예치금에만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아베 정책 지지자들은 기업 수익 대폭 증가, 주가 상승, 구직/구인 비율 호전, 대기업 중심으로 임금 상승 등 괄목할 성과를 이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체로 일본 경제는 개인소비 취약 등 하방 리스크가 상존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 중 두 개(금융정책 및 재정정책)의 효과는 긍정적이나 세 번째 ‘잃어버린 화살’(과감하고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초기 개혁 시도는 ‘근본적인 개혁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울러 일본 경제의 본격 회생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역시 잃어버린 ‘세 번째 화살’의 재추진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이코너미스트지는 일본 개혁이 부진한 이유로 이익집단의 압력을 꼽았다. 그 이익집단으로는 ▲농업 종사자들 ▲의사 등 의료 종사자들 ▲대기업들 ▲개혁이 가장 부진한 노동시장 ▲가장 강력한 저항 집단인 관료 사회가 거론된다.
이코너미스트지는 아베노믹스을 추진해 갈 근본 이념으로 ‘메이지 사상’을 강조했다. 즉 아베 총리가 메이지 개혁 정신을 바탕으로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그 어떤 장애(이익집단의 저항)도 이겨내고, 개혁과 변화를 강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미 꼭 관통시켜야 할 ‘마지막 세 번째 화살’을 가지고 사대에 올라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미래연구원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기준금리 도입을 발표한 지난 1월 29일, 하루종일 등락을 거듭했던 일본 증시는 닛케이225지수(닛케이평균주가)가 전날보다 476.85포인트(2.80%) 오른 1만7518.30으로 장을 마감했다. 사진은 도쿄 도심의 한 증권회사 앞 시황판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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