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 산후조리원 설치 발목 잡나
모자보건법 취지 반대되는 시행령으로 지자체 설치 어렵게 해
2016-03-06 15:52:51 2016-03-06 15:52:51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근거를 마련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정작 정부가 산후조리원 설치를 사실상 막는 내용의 하위 법령(시행령)을 입법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지자체의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허용 기준을 담은 ‘모자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을 4월14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지자체는 ▲산후조리원과 산모신생아건강관리사가 없고 ▲경계에 있는 지자체의 산후조리원·산모신생아건강관리사의 수요충족률(공급/수요)이 60% 이하라는 2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만 공공산후조리원을 설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 민간산후조리원이 단 한곳도 없는 지자체는 드물다.
 
모법인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산후조리원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설치 기준과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시행령)에 위임했다. 즉 모법의 입법 취지는 지자체장에 산후조리원 설립 권한을 주는 내용이지만, 정부는 산후조리원 설치를 사실상 막는 '설치 기준’을 만든 셈이다.
 
해당 법안의 배경에는 지난해 3월 경기도 성남시의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움직임과 그에 반대하는 복지부의 갈등이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역 내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을 설치하고 민간산후조리원 이용료 지원 등 산후조리비 지원을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복지부는 과도한 복지정책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이는 여야 정치쟁점으로 확전됐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여당이 원하는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지원법에 협조하는 대신 모자보건법 개정안과 대리점거래공정화법(남양유업법), 전공의보호법 등을 통과시켰다. 만약 정부가 앞으로 문제의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 여야 빅딜을 통해 만든 공공산후조리원 관련 조항은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측은 “지자체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산후조리서비스 지원을 받기 어려운 지역에 보충적으로 산후조리원을 설치하는 것”이라며 “입법예고 기간 중 산후조리원협회, 지자체, 전문가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개최해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후 확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민주 남인순 의원은 6일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이 법의 취지와 반대되는 시행령을 만든 것”이라며 “산후조리원이 없는 지자체는 실제로 출산이 적어 수요 자체가 없는 곳인데 그런 지역들로 설치 대상을 한정하는 것은 공공산후조리원을 만들지 않으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시장도 4일 페이스북에 “법이 통하는 법치국가가 아니라 시행령 만능의 ‘령치국가’의 본 모습"이라며 "하기야 세월호특별법도 그랬고, 모 국회의원은 이런 부당조치 고치려다 괘씸죄로 쫒겨나기까지”라고 말했다. 국회법 파동으로 물러난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의미한다.
 
이 시장은 “법이고 자시고 마음대로 하는 인치주의 새역사가 열렸으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라며 “민주공화국이 아닌 전제군주국 대한민국입니다”라고 박근혜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이 지난 1월4일 시청 한누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부터 청년배당과 교복지원, 공공산후조리지원 등 성남시 3대 무상복지사업을 전면 시행한다”고 선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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