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원지가격을 담합한 제지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으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애꿎은 중소형 판지사들만 역풍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벌써부터 업계 내에서는 대형 제지사들이 과징금을 만회하기 위해 원지가격 30%를 인상할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위는 13일
아세아제지(002310),
신대양제지(016590),
동일제지(019300), 고려제지, 한솔페이퍼텍, 아진피앤피 등 12개 골판지 원지 제조사들의 가격 담합에 대해 과징금 1184억원을 부과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 초 공정위가 20여곳의 골판지 업체에 심사보고서를 보냈을 때 예상됐던 과징금은 9500억원 수준이었다. 나머지 대형 판지사들의 과징금 결정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당초 예상됐던 과징금 대비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현행법상 담합 행위는 매출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지만 이번 과징금 규모는 지난 5년간 해당기업 매출액의 2% 수준이다. 여기에
태림포장(011280) 계열 동일제지는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를 통해 163억원의 과징금을 전액 감면 받는다.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서 중소형 판지사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대형 제지사들로부터 원지를 구매해 골판지를 제조해야 있는 이들 입장으로서는 제지사들의 일방적인 원지가격 인상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대형 제지사들의 담합이 있었던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골판지 원지 단가는 60~70% 대폭 인상됐다. 2012년 당국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원지 단가가 안정세를 되찾았지만, 이번 과징금으로 가격인상 움직임이 되풀이 될 수 있다. 담합을 근절치 못하고 또 다른 담합만 불러온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형 판지사 관계자는 "예상보다 적게 나온 이번 과징금 규모에 대해 대형 제지사들은 '예상했다'는 반응"이라며 "과징금 부과에 따른 수익을 보존하기 위해 이르면 다음달부터 원지가격을 다시 올린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인상률은 30%로 얘기가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시 대형사들의 가격 인상에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 신세"라며 "대형사들의 카르텔이 깨지지 않는 이상 중소형사들이 살아남기는 점점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대형 제지사로부터 원지를 공급받아 판지를 생산하는 중소형 판지공장 내부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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