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민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국정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소통 행보를 시도했다. 그러나 2주 전 총선에서 정부·여당을 심판한 싸늘한 민심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는 한편 마이웨이식 처방을 내놓음으로써 향후 더 큰 논란을 자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찬간담회에서 “각계각층과의 협력, 그리고 소통을 잘 이뤄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남은 임기 동안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잘 반영해 변화와 개혁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3당 체제, 민의가 만들어 준 것...친박, 내가 만든 적은 없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현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박 대통령은 먼저 총선 결과에 대해 “국회가 양당체제로 되어 있는데, 서로 밀고 당기면서 되는 것도 없고 정말 무슨 식물국회라고 보도에도 봤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며 “양당체제에서 3당 체제를 민의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3당 체제에서는 뭔가 협력도 하고 또 견제할 건 하더라도 뭔가 되도록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민생과 경제 활성화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런 쪽으로 변화를 국민들이 바라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유권자들이 집권 여당을 심판한 것을 두고 양당체제를 심판한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며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프레임을 씌워왔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은 옳은데 일하지 않는 국회 때문에 아무 일도 못 한다는 인식을 재차 보여줬다는 평가다.
친박 계파에 대한 질문에 대해 박 대통령은 “사실은 제가 친박을 만든 적은 없다"며 "어떻게 보면 친박이라는 말 자체가, 특히 선거 때 자기의 선거 마케팅으로 자신들이 그냥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친박이라고 그랬다가 탈박이라고 그랬다가 짤박이라고 그랬다가 별별 이야기를 다 만들어내면서 한 것"이라고 답했했다.
이어 "제가 거기에 관여하지도 않았다"며 "예를 들면 지난 19대 국회 때 전혀 협조를 안 해 주고 계속 반대 목소리만 낸 사람도 대통령 사진을 마케팅으로 이용했다. 그래도 하라 마라 그런 이야기도 안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아 30% 이하로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당근 정책을 내놨다. 박 대통령은 “5월 6일 임시공휴일로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직자 골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얼마든지 칠 수 있는데 여기서는 눈총에다가 여러 가지 마음이 불편해서 내수만 위축되는 결과를 갖고 오지 않겠는가”라며 “좀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으로 경제 위축 우려...개각 등 인적쇄신 없다”
박 대통령은 또 김영란법에 대해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었다”며 “국회 차원에서도 한번 다시 검토를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다”며 개정을 원하고 있음을 밝혔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이게 법으로 통과가 됐기 때문에 어쨌든 정부로서도 시행령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기간이 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해서 그러면 선물 가격을 얼마로 상한선을 하느냐 이런 게 다 시행령에 들어가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하려고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란법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이 경제 위축을 이유로 개정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경제 위기 문제를 별 관련이 없는 김영란법 문제와 연계시키면서 법의 취지를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구조조정 문제에 관한 질문에 “구조조정에서 파생되는 실업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게 구조조정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며 “그러려면 신산업, 투자가 많이 일어나서 근로자 재취업이 이뤄져야 하고 그게 노동개혁법에 다 있는 건데 그렇게 해서 많이 생기는 일자리를 가서 새롭게 인생을 개척하고 이렇게 선순환적으로 돌아가는 건데, 그게 안 되니깐 안타깝다”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3당 대표와 만나는 것을 정례화하는 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이란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이른 시일 내에 3당 대표를 만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여야 연정 가능성은 일축했다. 박 대통령은 “연정 같은 것이 대타협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는데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선택한 것, 그 다음에 이번 총선을 통해서 국민이 만들어준 틀, 그 안에서 우리가 서로 협조하고 더 좀 노력을 해서 국정을 이끌어가고 마감을 해 거기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서로 정책이나 생각이나 가치관이 엄청 다른데 막 섞여 있으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그리고 누가 책임을 지느냐. 책임질 사람도 없게 되니까 그건 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고 말했다.
◇“배신의 정치, 평소의 비애 같은 것 이야기한 것”
박 대통령은 유승민 의원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자기정치 한다고 막 대통령을 더 힘들게 만들고, 하나도 도와주지는 않고, 그런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느꼈던 평소의 비애 같은 것, 허탈함 같은 것, 그런 것을 그때 전반적으로 얘기를 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다"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비상대책위원장도 했고 당 대표도 했다"며 "그 당시에 당 대표라는 자리가. 아무도 맡을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그때마다 나서 가지고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갈 정도로 최선을 다해 갖고 어쨌든 그 당을 다시 좀 신뢰를 받는 당으로 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선거를 치렀고 많은 사람들이 당선이 됐는데, 당선 되고 나서는 그 다음에 자기 정치한다고 또 이렇게 갈라서게 된 것"이라며 "선거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되고 나서는 그 길을 간다고 하면 그것 어떻게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유승민 의원의 복당에 대해서는 "새누리도 보니까 안정이 안 돼 있다. 앞으로 안정이 되고 지도 체제가 잘 안착이 되고 하면 그때 협의해서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 한다"며 당장 결정하지 말 것을 에둘러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또 총선 패배 후 제기되는 인적쇄신 요구에 대해 “안보가 시시각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지금 변화해 가지고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서 이걸 내각을 바꾼다 하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거부의 뜻을 밝혔다.
◇“자부심 가질 수 없는 교과서 반대...한일 합의에 소녀상 언급 없다”
박 대통령은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현대사가 정의롭지 못하고 오히려 이 대한민국은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더 잘하고 있고 정통성은 북한에 있고, 이렇게 인식이 되면서 자라나면 우리 세대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전혀 자부심이나 긍지도 느낄 수 없고 또 통일시대에도 이거 뭐 북한식으로 되어버리고 말 것”이라며 “아무런 자부심을 가질 수가 없는 이런 교육은 이제 올바른 역사관으로 바꾸어야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통일이라는 것도 우리가 중요한 앞으로의 국가 목표인데, 통일이 됐을 때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올바른 통일이 되어야지,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예를 들면 기술을 하는 데 있어서 대한민국은 정부수립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그런데 북한은 국가수립이라고 했다. 그러면 정통성이 어디에 있느냐. 6·25 전쟁도 북한이 남한을 이렇게 침범한 것인데, 그렇게 침략한 건데 남북이 같이 책임이 있다, 이런 식으로. 또 남북분단의 책임은 대한민국에 있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북한이 분단된 후에도 수많은 도발을 하고 최근까지도 천안함에다가 연평도 거기다가 많은 우리 국민들이 희생을 당하고 고통을 많이 당했는데 그건 다 그렇게 애써서 축소를 해 놨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와 관련해 "지금 소녀상 철거하고 연계가 돼 있느니 어쩌니 하는데, 이건 정말 합의에서 언급도 전혀 안 된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그런 것을 갖고 선동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어렵게 합의를 본 마당에 저분들이 생존해 계실 때 실제로 도움을 드리고, 마음의 치유도 해 드려야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취지를 존중하도록 일본도 노력하고, 빨리 후속조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 분들, 관련 단체와 소통하며 빨리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지난번 핵안보정상회의 때 진행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이같은 내용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어려운 합의에 착수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공감하고, 재단설립 등 후속 조치는 물론 미래세대에 대한 역사교육을 확행할 것을 양국간 공유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초청 오찬간담회에 참석해 환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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