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1974년생인 배우 곽도원은 연기를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한 곽도원은 아동극 전문극단도 차렸지만 곧 극단을 접는 등 배우의 삶이 순탄치는 못했다.
20대 중반 연희단거리패의 밀양연극촌에서 재기를 다지기도 했지만, 그의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심기일전 하고자 30대에 들어 각종 영화의 단역으로 나섰고, 그러던 중 나홍진 감독의 '황해'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 곽도원은 '변호인'을 통해 천 만 배우가 됐고,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으로 첫 주인공을 맡았다.
강렬한 카리스마로 악역 전문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 그는 '곡성'에서 시골의 순박한 경찰 종구로 나선다. 연기뿐 아니라 현장의 리더 역할도 해야하는 주인공을 생애 처음으로 맡은 곽도원을 지난 6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곡성'에 대한 쏟아지는 호평 덕에 얼굴에는 자신감과 여유가 묻어있었다. 곽도원은 "'곡성'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배우 곽도원이 '곡성'에서 첫 주연으로 나섰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집요하기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의 페르소나
나홍진 감독은 집요하기로 유명하다. '곡성'에 나온 천우희는 "나 감독님은 타협이 없다"고 했고, 황정민은 "나만큼이나 집요하게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추격자'와 '황해'의 두 주인공인 김윤석과 하정우는 촬영 당시를 생각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다. 곽도원은 그런 나홍진 감독의 '곡성'의 156분 중 70~80% 정도 분량을 감당했다.
비중이나 분량보다 놀라운 것은 흐트러짐 없는 곽도원의 연기다. '곡성'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배우들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일부 투박한 부분이 있다. 그런 투박함을 곽도원이 메워주고 채워준다. 곽도원은 나 감독이 자신을 믿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털어놨다.
"나 감독은 촬영 장소에서 배우가 느낀 감정을 정말 소중히 생각한다. 일본인 방이라고 하면 초도 켜놓고 죽은 동물도 갖다 놓는다. 그러고는 '뭐가 가장 먼저 보이냐'고 물어본다. 공간을 배우가 몸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내가 가장 먼저 느낀 부분부터 카메라 앵글을 돌린다.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하긴 한다. 시나리오라는 기본 바탕에서 얼마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느냐가 배우의 역량에 달렸는데, 역량을 높이려면 감독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 감독은 나를 전적으로 믿어줬다."
곽도원은 '곡성'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한계에 부딪히다
곽도원이 '곡성'에서 맡은 종구는 한 딸의 아버지다. 시골 곡성에서 전염병과 함께 기이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종구의 딸도 그 병에 걸린다. 이 병마와 싸워 이기기 위해 온 몸을 희생하는 아버지를 연기한다. 심신이 나약하고, 소심하며 어떤 때는 지질하기도 한 종구는 딸을 구하고자 백방으로 뛴다. 처절한 부성애는 종구라는 인물을 무서울 게 없는 아버지로 탈바꿈시킨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인물이다. 곽도원은 딸 역의 환희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곡성'의 종구처럼 어떤 충격적인 일을 접했을 때 누군가는 포기할 수도 있고, 누구는 이걸 해결하려고 죽을 듯이 노력할 수도 있다. 종구는 부성애를 동력으로 이 사건을 이겨내려고 했다. 근데 나는 결혼도 안했고, 자식도 없다. 밑 빠진 독에 엄청난 사랑을 집어넣는 종구인데,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 주위 아버지인 친구들에게 질문을 해보면 속 끝에서 밀려오는 답답함만 내비치더라. 한계라고 생각한 시점에 딸을 연기한 환희가 내가 진짜 아버지로 여겨지게끔 연기를 해줬다. 애가 천재 같다. 10살 정도 된 아이가 현장에 와서 울고 몸을 꺾고 그러면 진짜 울컥한다."
동료들의 헌신, 겸손을 배우다
영화 촬영은 '없는 정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배우나 감독이나 무엇이 정답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완벽하다 싶은 장면을 만들어간다. 더구나 집요함을 자랑하는 나홍진 감독이 연출가다. 하루하루가 험난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힘겨운 매일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헌신 덕분이었다.
"우물 싸움신은 6일을 찍었다. 우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데 3일이었다. 스피디하게 넘어가려면 컷도 많았고, 계속 액션신이다보니까 예상보다 길어졌다. 4일째였던 것 같다. 박춘배 역을 맡은 길창규라는 연극배우의 등을 봤다. 등판이 보라색으로 새까맣게 멍이 들어있었다. 어깨도 허벅지도 그랬다. 그런데 현장에서 '천천히 좀 해라', '쉬었다 가자', '힘들다' 이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 OK가 떨어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모여서 박수를 쳤다.그러면서 배운 거다. '난 과연 저렇게 처절했던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해지더라."
'곡성' 촬영장에서 열연 중인 곽도원과 그를 돕고 있는 스태프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한계를 뛰어넘게 한 '곡성'
그토록 처절하게 찍은 '곡성'은 2시간 30분 내내 감탄을 유발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스태프들의 노력이 온전히 전달된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이 영화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해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심에 곽도원이 있다. 그는 '곡성'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생애 첫 주연이고 저를 칸에 보내게 해준 작품이다. 그것보다 더 고마운 건 내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 영화라는 거다. 나는 내 한계가 딱 요만큼인 줄 알았다. 이것만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 영화를 하고 싶지만 내 한계 밖인 것 같아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매일 매일 자기 전에 '해냈구나'라고 기뻐했다. 그 때마다 짜릿했다. 늘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찍은 작품이다. 난 울트라 초사이언인이 된 것 같다. 이제 2~3일 밤새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나홍진과 '곡성'이란 행운
곽도원이 그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나홍진 감독의 믿음이 있었다. 곽도원을 잘 모르는 '곡성' 투자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다른 배우를 추천했지만, 나 감독이 곽도원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곽도원은 '곡성'의 주인공이 됐다.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곽도원은 온 몸을 던졌다. 벌써부터 올해 영화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은 곽도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곽도원은 나 감독에 대해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저 사실 악역만 해도 먹고 산다. 썩어도 준치라고 영화를 망가뜨리지는 않을 거다. 그럼 관객들은 제 얼굴 볼 때마다 '저놈이 나쁜 놈이네' 할 거다. 사실 '변호인' 차동영 역도 세 번 거절하고 한 작품이다. 관객들이 재미 없어 할까봐 그랬다. 내 안에 차동영도 있지만 순박한 것도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기회가 배우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다. 로마 그리스 신화에 행운이라는 신은 앞머리가 바글바글하지만 뒤통수에는 머리털이 없단다. 나한테 싹 오다가도 뒤를 돌아서면 못 잡는다고 한다. 나 감독과 스태프, 동료 배우들은 내게 있어 앞머리가 바글바글한 행운이다. 깨어나 있지 않은 곽도원을 발견하고 아주 훌륭히 요리를 해줬다. 나홍진 감독은 영원히 감사한 사람이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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