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천우희는 지난 2014년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자신의 위상을 높였다. 영화 '한공주'에서 깊은 내면의 상처를 오롯이 표현하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천우희가 발 빠르게 작품을 하면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천우희는 조급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자신 만의 템포로 작품의 매력만을 중시했다. 주인공을 노리기는커녕 분량이나 비중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렇게 택한 영화가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이다.
선인지 악인지, 사람인지 초월적인 존재인지,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은 무명 역으로 관객 앞에 선 천우희를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대혼돈을 안겨드리고 싶었다"고 말한 천우희는 "징글징글하게 최선을다하는 현장에서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배우 천우희.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천우희가 '곡성'에서 맡은 역할은 무명이다. 다른 역할보다 분량이 적고, 초반에 잠깐 등장했다가 후반부에 엄청난 임팩트를 드러내는 역할이다. 극 중에서 캐릭터의 설명도 없고, 비중도 적은데 임팩트는 보여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는 연기파 배우인 천우희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고 한다.
그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늘 어려운 작업인데, 무명은 주변에서 봐왔거나 공감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존재이었고, 선과 악의 경계선도 불분명했다"며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모호하고 관객들이 헷갈리게끔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후반부 무명과 일광(황정민 분)과 대치하는 장면은 숨을 멎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약 30초 정도의 이 짧은 신에서 스크린을 압도한다. 아울러 종구(곽도원 분)와 부딪히는 신에서도 천우희는 강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영화를 처음보고 나면 천우희가 떠오른다. 10여년 이상의 선배들과 맞붙어도 전혀 기죽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천우희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제 입으로 제 칭찬을 하기는 좀 어렵다"면서 운을 뗀 천우희는 "내가 집중력은 좋은 것 같다. 어린애 같아서 무언가에 푹 빠지면 집중력이 유지된다. 또 상상력이 좋아서 글만 읽어도 그림이 휙하고 그려진다. 어떤 형상을 잘 그리는 거 같은데, 그게 연기에 좋은 방향으로 반영된다. '곡성'도 내가 그린대로 잘 나온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배우 천우희.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을 연출한 나 감독은 영화계에서도 타협 없이 집요한 감독이라는 평가가 자자하다. 앞서 천우희는 나 감독을 두고 "징글징글 하다"고 했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 때문에 힘들었던 건 없었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봉준호 감독님(마더)도 진짜 집요하고, 강형철 감독님(써니)도, 이수진 감독님(한공주)도 똑같다. 이미 집요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단련이 돼 있었다"며 "사실 징글징글한 게 난 더 좋다. 에너지가 넘치고 원하는 결과를 위해 극단적으로 온 힘을 쏟는 게 좋다. '곡성'은 욕심과 자극을 준 현장"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고의 감독들과 작업을 했다며 자신을 두고 인복이 있는 배우라고 말한 천우희는 '멋진 하루'의 이윤기 감독의 신작 '마이엔젤'에 돌입한다. 이미 30대 배우 중 최고의 연기파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곡성'에서 욕심마저 느낀 그가 '마이엔젤'에서는 어떤 매력으로 관객 앞에 나타날지 주목된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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