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갈수록 시나브로 경제 불황의 여파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2% 초반으로 곤두박질치고,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년 1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경기 침체의 먹구름이 산업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4·13 총선 이전만 해도 경제낙관론을 폈던 박근혜정부도 이제는 낯빛을 바꾸었다. 조선·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 등 5개 취약 업종의 구조조정을 공론화하고 노동자의 대량 감원과 산업구조 개편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그런데 구조조정은 벌써 작년부터 시작되었다. 정부가 경제낙관론을 외치며 장밋빛 환상에 빠져 있던 작년부터 재벌·대기업과 금융권에서는 ‘소리 없는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부실기업 얘기만은 아니다. 통계청의 ‘2015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 및 보험업 취업자는 4만8000명이 줄었다. 중앙일보가 국내 상장사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고용 현황을 보면 감소 추세는 뚜렷하다. 지난해 말 기준 1753개 상장사의 근로자는 144만1019명으로, 전년보다 0.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조금 늘어난 일자리의 질도 나쁘다. 비정규직은 1336명 증가했지만 정규직은 157명 감소했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직원 수가 감소한 곳은 765곳(43.6%)이고, 이들 기업에서 줄어든 직원 수가 3만7234명이었다. 삼성전자가 2484명, 롯데쇼핑이 1850명, 두산인프라코어가 1671명, 현대중공업이 1299명 감소했다.
문제는 구조조정과 대량해고가 이제부터 본격화된다는 점이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논의되면서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최소 약 3만명의 실업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그동안 감춰졌던 부실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인 비금융법인 가운데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12.4%(2819개)에서 2014년 14.4%(3471개)로 늘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 내는 상황이 1년 지속된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36%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평균(4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한계기업이 늘어나면 은행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2015년 말 기준 대기업들이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436조7830억원으로, 이 중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 여신은 17조6945억원(4.05%)이다. 대기업의 이런 부실채권은 지난해 한해만도 무려 7조3312억원이나 늘었다.
부실기업의 증가는 기업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기업 파산과 실업대란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구조적 맹점인 과잉생산을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은 원하든 원치 않든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고통을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다. 구조조정에 따른 갈등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인 공통분모 찾기, 그것이 구조조정의 정치이다.
첫째, 권한과 책임에 비례한 고통 분담이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우선 대주주나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한다. 이익이 나면 기업 것이고 손실이 발생하면 사회가 부담하는 ‘기업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 논리를 벗어나야 한다. 현대중공업 등 조선산업의 대규모 인력 감축이 진행 중이지만 경영진의 책임 및 대주주의 사재출연 이야기는 없다.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 10년간 30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아갔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둘째, 인력감축 중심의 양적 구조조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조조정의 목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숙련된 노동자들을 작업장에서 모두 쫓아내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고용유지를 최대 목표로 한 업종별 노사정 간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뿐 아니라 고용 총량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독일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조업단축지원금 지급기간을 6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해 150만명의 노동자 해고를 막았다.
셋째, 사회안전망의 제도적 정비와 확충이다. 노동자의 실직 공포를 해소할 수 있도록 실업급여 기간의 대폭 연장과 실업부조 도입, 교육훈련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또 다시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의 사회적 아픔을 반복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정부는 구조조정의 총괄 책임자로 나서야 한다. 박대통령은 일자리를 늘리고(늘) 지키고(지) 질을 올리는(오) ‘늘지오 공약’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대선 일자리 공약 이행은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대량실업을 막는 리더십은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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