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박준형 기자] 국내 자본시장에서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의 기업사냥이 판을 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가조작 등 불공정행위로 주가를 띄운 이후 '먹튀'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가로채면서 표적이 된 기업들은 껍데기만 남고 기업을 믿고 투자한 개인투자자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최근 적대적 M&A 우려를 받고 있는
미디어젠(279600)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주·CB 털이 후 M&A 철회 반복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무자본 M&A(자기자본 없이 대출이나 차으로 지분을 인수)가 세력의 '먹튀'에 활용된 사례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지난해 10월부터 최대주주 변경을 추진해오던
전진바이오팜(110020)의 최대주주 변경이 무산됐습니다. 전진바이오팜과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던 다빈비엔에스는 잔금을 납부하지 않았고, 28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과 유상증자도 철회됐습니다.
M&A 과정에서 전진바이오팜의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했습니다. 작년 10월 5000원선에 거래되던 주가는 일주일만에 1만원선을 넘어가며 2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이 기간 전진바이오팜의 CB투자자들와 일부 투자자들은 주식전환과 장내매도를 통해 차익을 실현했습니다. 일부 세력들의 차익실현과 함께 M&A까지 철회되자 전진바이오팜의 주가는 3000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TS트릴리온(317240), 해성에어로보틱스(전
해성티피씨(059270)) 등 M&A 계약과 함께 주가가 급등했던 상장사들 상당수가 M&A나 자금조달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M&A 주체가 실체를 확인하기 힘든 투자조합이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이뤄졌으며, 인수자금 대부분 외부에서 차입했다는 점입니다.
경영권 변경과 함께 신사업 기대감 등으로 주가가 급등했지만, 재무적투자자(FI)들의 구주 매도와 CB투자자들의 주식전환 등이 쏟아지면서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그럴듯한 M&A와 2차전지, 로봇 등 신사업 발표는 개인투자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던 셈입니다.
미디어젠도 무자본M&A 주의보
무자본 M&A세력 등이 벌이는 불공정행위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당국의 대응은 사후 감독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한국거래소 황소상. (사진=한국거래소)
적대적 M&A에 노출된 미디어젠 역시 무자본M&A 세력들의 불공정거래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앨터스로부터 미디어젠 지분 대부분을 인수하는 이티홀딩스는 계약 자금 납입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티홀딩스는 자본금 3000만원에 설립된 사실상 장부상 회사로 지난 2022년 기준 ‘완전 자본잠식’에 빠져있습니다.
앨터스와 이티홀딩스 지분 매매계약 규모는 약 235억원에 달합니다. 이티홀딩스는 지분 취득자금 전액을 자기자본이라고 신고했는데요. 이티홀딩스의 자본금이 3000만원이고 자본총액은 -1500만원입니다. 회사의 유보금이 없으니 자기자본 235억원은 외부에서 조달해야 합니다. 결국 외부차입을 통한 무자본 M&A와 유사한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M&A에 나서는 주체가 완전자본잠식인 페이퍼컴퍼니라면 실질적인 자금 주체는 따로 있다고 봐야한다”며 “지분 매매 계약 체결 이전부터 자금조달에 대한 공조가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디어젠의 M&A 실질적 자금책으로는 윤강준 강남베드로병원장이 지목되고 있는데요. 앨터스와 이티홀딩스 등은 미디어젠 경영권 확보도 전부터 향후 신사업 방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신사업 방향은 강남베드로병원과 연계한 의료 AI 등으로, 이사회 장악 이후 신사업 추진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미디어젠 최대주주인 앨터스투자자문은 보유한 미디어젠 지분을 이티홀딩스와 다솜투자조합 등에 매각할 예정인데요. FI인 다솜투자조합이 인수하는 구주 물량은 언제든 시장에 풀릴 수 있습니다.
"혐의 포착 됐을 때만 조사"
무자본 M&A 세력 등의 불공정거래로 인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이지만, 실제 처벌을 받는 이들은 손에 꼽습니다. 업계에선 "실패한 주가조작만이 처벌을 받는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익명의 M&A 전문가는 "무자본 M&A가 이뤄지더라도 불공정거래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진 정상적인 기업"이라며 "불공정거래가 의심되더라도 주가조작 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처벌받는 주가조작은 사실상 실패한 작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행정편의주의적인 자세가 무자본 M&A 세력 등의 불공정거래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무자본 M&A가 의심되는 경우와 투자조합 등을 통한 자금조달, 신사업 추진이 잦은 기업들의 모니터링만 제대로 이뤄지더라도 사전예방이 가능할 것이란 판단입니다.
통상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등 당국은 특정 기업의 주가가 급등할 경우 해당 기업에 중요한 미공개 정보가 있는지 묻는데요. 감시시스템이 주가 변동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다 이상징후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주가조작 등 불공정행위가 벌어진 다음입니다. 불공정거래가 의심되는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지만 사후 감독에 불과한 셈입니다.
금감원은 무자본 M&A 세력들의 불공정거래 가능성은 인지하면서도 무조건 불법으로 볼 수는 없어 사전 적발이 쉽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조합이나 페이퍼컴퍼니 등 M&A 주체와 관계없이 모든 거래건에 대해 자료요청을 하거나 조사하지는 않는다"면서 "불공정거래가 발생하고 그 혐의가 포착됐을 때 조사를 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은 무자본 M&A 자체를 불법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전 감독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여의도 금감원 전경.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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