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 하나
. 전에 다니던 회사의 대표는 유난히 소통을 강조했다
. 직원들은
'소통'
때문에 괴로워했다
. 대표가 말하는 소통은 의사결정이 위에서 아래로 잘 흐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직원들은 회사를 떠났고
(내보낼 때 대부분 이유도
'소통이 안 돼서
'였다
), 그 회사는 수시로 직원모집 공고를 낸다
. 모집 공고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여전히
'소통하는 회사
'다
. 동료와 회사 뒷담화를 하다가
"차라리 로봇을 뽑는 게 낫지 않겠느냐
"고 농담을 던졌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 "로봇도 소통 못 하는 녀석은 잘릴걸요
?"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던 중국이 최근 노동력 감소와 인건비 상승에 시달리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사람을 로봇으로 대체하기(replacing humans with robots)' 프로젝트. 실제 터치스크린용 액정을 만드는 광둥(廣東)성의 한 회사는 생산인력 대부분을 로봇으로 대체했다. 생산물량을 맞추려면 최소 6000명의 노동자가 필요하지만, 로봇으로 대체한 후 1800명으로 충분해졌다. 에어컨 부품을 만드는 또 다른 공장 직원은 취재진에게 "우리는 로봇 옆에서 일하고 매일 함께 지낸다.어떤 상사라도 로봇을 더 좋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봇 보유량 4만1000대, 지난해 로봇 증가량 1만8000대, 로봇의 시장점유율 19%, 2020년 로봇 보유량 30만대. 광둥성의 로봇 혁명은 중국의 '사람을 로봇으로 대체하기' 프로젝트의 한 단면이다. 부족한 노동력을 충족하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인건비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꺼낸 카드가 '로봇 굴기'라는 건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으로 대체할 때 발생하게 되는 일이 단순히 정서적인 측면뿐이라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사정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사람들이 쓰는 돈이 적어지고 세수도 부족해진다. 회사도 자기들이 만든 물건이 팔리지 않아 재투자나 성장이 어렵다. 국가 차원으로 보자면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문제를 앞서 고민하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EU(유럽연합)이다. 이른바 '로봇세'인데, 제조업이나 다른 여러 분야에서 로봇이 확산되면 대규모 실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로봇을 '전자인(electronic persons)'으로 간주해 소유자에게 세금을 물리자는 것이다. 유럽의회는 이 같은 로봇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통해 "로봇으로 인한 실직 등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안이 필요하다"며 "로봇이 노동력을 대규모로 대체하기 시작하면 로봇 소유자들이 세금을 내거나 사회보장에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알파고' 열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국내에서도 로봇세는 꽤 자주 언급된다. 중도 성향의 국회 정책연구모임인 '어젠다 2050' 창립총회에서 의원들은 로봇세 도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얼마 전 열린 미래학회(회장 이광형 KAIST 교수) 창립학술대회에서도 로봇 확산에 따른 문제점과 대응책이 발표됐다. 경고의 내용은 유럽의회 보고서와 궤를 같이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확산되면 실업률이 높아져 세수는 줄어드는 반면, 복지재정 수요는 크게 늘어 취업자들의 세금 부담이 급증하게 된다. 이와 함께 전체적인 세 수입 감소가 불가피한 만큼 이를 보전하기 위해 로봇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의 더 편한 삶을 위해 사람이 개발한 로봇 때문에 세금까지 더 내야 한다는 얘기는 왠지 씁쓸하게 들린다. 어쩌면 로봇 때문에 일자를 뺏겼는데도 로봇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로봇 사용세까지 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산업을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구호가 무조건 '성장'에 맞춰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여기저기서 논의되고 있는 로봇세라는 화두가 성장의 '그늘'까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사족 둘. 서두에 전에 다니던 회사 얘기를 꺼낸 것은 새삼 그 회사와 대표를 욕하자는 뜻이 아니었다. 직원들끼리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회사의 대표도 로봇 채용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광둥성의 에어컨 부품 회사 직원의 말처럼 ‘어떤 상사라도 (직원들보다는)로봇을 더 좋아할 것’이 분명하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그런 날이 와도 그 대표는 ‘소통하는 회사’를 앞세울 것이라는 점이다. 직원들이 지시에 순종하고, 불평불만 없는 회사가 될 테니까.
김형석<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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