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포커스)잘 만든 '부산행'의 악질적인 반칙
2016-07-18 12:48:37 2016-07-18 12:48:37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오는 20일 개봉 예정인 영화 '부산행'은 잘 만든 좀비 영화다. 자잘한 이야기를 빼고 빠르게 본론으로 달려가 배우 심은경을 '신 스틸러'로 활용해 시선을 끄는 초반부는 깔끔하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끝날 때까지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구성 역시 훌륭하다. 좀비를 아주 징그럽지는 않게 구현해 거부감을 주지 않으며, 가장 어린 김수안부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의성까지 출연 배우들은 흠 잡을 곳을 허용하지 않는다. 몇몇 장면은 인상이 깊고, 메시지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몇 가지 사소한 흠을 제외하고는 칭찬 받을 구석이 압도적으로 많다. 만듦새가 훌륭한 '부산행'이 애니메이션만 만들어왔던 연상호 감독의 입봉작이라는 게 놀랍다는 평가도 나온다.
 
칭찬할 거리가 많은 좋은 영화는 마땅히 흥행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 '부산행'의 흥행은 응원하기가 힘들다. 영화 시장을 교란하는 반칙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영화 '부산행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수준의 유료시사회를 감행했다. 사진/NEW
 
20일 개봉하기로 한 '부산행'은 전주 주말 황금시간대에 유료시사회를 열어 56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했다. 이 영화는 3(15~17) 동안 총 1200곳이 넘는 상영관을 차지했고, 2500회를 뛰어넘는 상영을 했다. 기존 영화들이 공격적인 시사회로 마케팅을 할 때 5만 객석을 차지하곤 하는 관행과 비교해도 '부산행'의 수치는 11배를 넘는다. 개봉 전에 이미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때문에 전일 개봉이 아닌 '전주 개봉'이라는 말이 나온다. 반칙 치고도 아주 악질적인 반칙이라는 얘기다.
 
반칙의 보기 좋은 성공으로 인해 '봉이 김선달', '굿바이 싱글', '도리를 찾아서' 등 큰 작품은 물론 '트릭', '데몰리션', '언더워터' 13일 개봉작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영화 개봉 후 가장 중요하다는 첫 주 주말에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부산행'에 상당수 빼앗겼기 때문이다.
 
배급사 NEW의 조바심은 일부 이해가 된다최근 2년 동안 '연평해전'을 제외하고는 크게 흥행한 작품이 없다. 2014년 여름 텐트폴이었던 '해무'(147)는 호평에 비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고, 2015년 여름에 개봉한 '뷰티 인사이드'(205)는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 그쳤다최민식 주연의 '대호'(176)는 손익분기점(600)에 턱 없이 부족한 숫자로 참패했다올해 개봉한 영화 '오빠 생각'과 '널 기다리며'도 적자를 봤다.
 
아울러 한 주 뒤에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과 '제이슨 본' 역시 기대작이라는 점에서 NEW가 느낄 압박감은 더욱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패를 거듭하던 중에 누가 봐도 잘 될 '부산행'을 반드시 흥행을 시키고 그간 열악했던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욕구는 이해되지만, 백 번 양보하더라도 질이 너무 나쁘다.
 
영화의 성공여부는 언제나 예상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모든 영화 배급사와 제작사는 조바심을 느낀다. 그럼에도 다른 배급사가 반칙을 하지 않는 건 상도의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서다. 하지만 '부산행'의 이 행위는 다른 배급사들에 반칙의 명분을 줄 정도로 지나친 면이 있다'부산행'의 경우 워낙 잘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반칙이라는 날개를 달은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훨씬 뛰어넘는 흥행을 할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결과물로 흥행을 하더라도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고울 수가 없다. NEW의 잘못된 판단이 잘 생기고 훌륭한 '부산행'이라는 제 얼굴에 침을 뱉은 셈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결과물이 배급사의 이기심으로 퇴색돼 씁쓸함을 감추기 힘들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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