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혜실기자] 최순실 게이트의 도화선이 됐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회원사들로부터도 외면을 받으면서 해체 위기로 내몰렸다. 이미 공기업들 상당수가 탈퇴한 가운데, 재계로서는 '계륵'이 된 전경련이 스스로 자신의 퇴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26일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한화 등 6개 그룹의 회장(부회장)을 상대로 전경련 탈퇴 여부에 관해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 1일까지가 답변 시한이지만, 해당 그룹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재계에서는 '침묵'이 의미하는 바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여론이나 정치권의 움직임을 감안하면 탈퇴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먼저 나서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솔직히 이러지로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난도 쏟아졌다. A그룹 관계자는 "설립 당시 취지와 기능은 잃은지 이미 오래"라며 "재계 입장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할 뿐인데 이것마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존재이유를 부정했다. B그룹 관계자도 "앞장서서 강제모금을 해놓고 이제는 그 불똥이 출연금을 낸 기업들에게 번지고 있다"며 "오히려 경영활동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힐난했다. C그룹 관계자 지적은 보다 구체적이다. 그는 "이건희·정몽구·구본무·김준기 등 전경련에 발을 끊은 회장들이 수두룩하다. 후임 회장도 찾지 못해 인선 때마다 골머리"라며 "재계를 대표하는 위상에서 시정잡배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별히 득이 될 게 없는 상황에서 매달 납부하는 회원비와 각종 모금도 부담이다. 전경련은 연간 600여 회원사로부터 500억원가량의 회비를 걷는다. 하지만 회비 책정 방식과 회비 이용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데다,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과 같은 일회성 찬조금도 그치질 않는다. 전경련을 통한 정권 차원의 직간접적 압박도 상당하다.
실제로 한 재벌그룹 계열사인 A사, B사, C사는 각각 전경련에 내는 연간 회비만 7억원, 4억5000만원, 1억5000만원이다. 연간 매출은 각각 29조원, 11조원, 4조원가량이다. 당기순이익까지 감안하더라도 일관적인 책정 방식으로는 나올 수 없는 계산이다. 이 그룹이 부담하는 전체 회비는 20억원에 달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비는 사무국 회비 규정에 따라 책정하고, 많이 버는 기업은 더 많이 내도록 차등부과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회비의 정확한 책정 규정을 공개할 수는 없다. 법정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공개할 이유도 없다"며 향후 공개 전환 계획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전경련이 존재 목적과 업무 범위 및 방식, 회비 체계 등 투명성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재계 관계자들은 "존재 자체가 현재로서는 부담"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전경련을 도와 부역에 나선 이들도 재벌그룹들이다. 순간만 모면하며 명맥을 이어오던 전경련이 태산 같은 사회적 요구에 직면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사진=뉴시스)
김혜실 기자 kimhs2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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